로버트 카파의 ‘이스라엘 하이파에 도착하는 유럽계 이주민들’. ⓒ국제사진센터/매그넘포토스
로버트 카파의 ‘이스라엘 하이파에 도착하는 유럽계 이주민들’. ⓒ국제사진센터/매그넘포토스
포연이 자욱한 독일 마을. 세 사람이 불길에 휩싸인 집을 뒤로한 채 피란길에 나서고 있다. 불길에 휩싸인 것은 집뿐만이 아니다. 가족과 나눴던 추억과 행복도 타오르는 불길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무거운 발걸음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불길을 지핀다. 평화에 대한 타오르는 갈망이다.

사진으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했던 로버트 카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사진전이 오는 10월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이번 사진전에는 미국 뉴욕의 국제사진센터(ICP) 소장품 160여점이 걸린다. 카파의 동생인 코넬 카파가 직접 선택하고 인화한 오리지널 작품들이다.

1913년 헝가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카파는 스페인 내전부터 제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인도차이나전쟁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흐름을 좌우한 비극적인 전쟁의 최전선에서 드라마틱한 순간들을 사실적으로 포착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종군기자가 된 것은 스페인내전 중 애인 타로가 장갑차에 깔려 죽은 개인적인 불행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는 전쟁에 대한 혐오감과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인간에 대한 짙은 연민이 깔려 있다.

이번 전시에는 그의 대표작 ‘어느 병사의 죽음’ 등 전쟁과 관련된 이미지뿐만 아니라 카파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살필 수 있는 사진들도 함께 소개된다. 그와 교유를 나눈 피카소와 마티스 등 예술가와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윈 쇼, 존 스타인벡 등 문학가들의 꾸밈없는 사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1995년 멕시코에서 발견된 126롤의 스페인 내전 필름에서 인화한 이미지도 함께 선보인다. 여기에는 카파의 애인이었던 타로의 이미지도 포함돼 있어 흥미를 자아낸다.

카파는 1954년 5월25일 베트남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전해 호송차량에서 내리지 말라는 군인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셔터를 누르다 대인지뢰를 밟아 산화했다.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긴 그의 치열한 취재정신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 모두가 되새겨야 할 좌우명임에 틀림없다. 어른 1만2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7000원. (0505)300-5117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