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전우가 묻힌 땅 밟은 '백발의 영웅들', "희생이 헛되지 않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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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밖 한강변 풍경
"다리 하나밖에 없던 폐허
압도적 발전…기적" 탄성
버스 밖 한강변 풍경
"다리 하나밖에 없던 폐허
압도적 발전…기적" 탄성
“오 세상에(Oh, my god), 믿기지 않습니다. 이곳이 정말 한국 맞습니까?”
열여덟 살에 6·25전쟁에 뛰어들었던 미국인 해리 벡호프 씨(78)는 전쟁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60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벡호프 씨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북한이 도발한 6·25전쟁이 ‘정전(停戰)’된 지 27일로 60년. 풋풋했던 벽안(碧眼)의 젊은이들은 이제 다리가 불편하고, 허리는 구부정했으며, 머리칼은 백발로 변했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 나이에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나라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싸웠던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터키 네덜란드 등 6·25전쟁 참전 ‘백발의 영웅’들이 25, 2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잇달아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정전 60주년 관련 각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60년 전에 비해 그야말로 ‘천지개벽’한 모습이었다. 1953년 미 공군 605 전술통제 비행중대에서 통신병으로 참전한 벡호프 씨는 “한국은 지난 60년간 기적을 일궈냈다”며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해낸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숙소인 잠실롯데호텔월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벡호프 씨는 창 밖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참전 당시 한강에 다리가 1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27개나 된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서울의 고층 빌딩과 자동차를 보면서 ‘압도적이다(overwhelming)’는 감탄사를 연신 쏟아냈다. 벡호프 씨는 자신이 미국에서 쓰는 LG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며 집에 있는 TV 3개는 모두 삼성 제품이라고 말했다.
터키 참전용사 투란 초크메드 씨(85)는 한국전을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한국이란 나라가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자원해 참전했다”며 “중공군이 밀려왔을 때 최선봉에서 싸웠다”고 회상했다.
또 “탄환이 코를 스치고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어 치료를 위해 터키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싸웠다”며 “한국은 제2의 조국”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 고아들이 초콜릿을 달라고 따라오고는 했는데 이렇게 부강해졌다니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참전후 아들 이름 킴으로 지어"
역시 터키 참전용사인 메흐멧 므스르 씨(81)는 “한국전에 참전해 지킨 이 나라가 이 정도의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는 걸 믿기 어렵다”며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힐미 에르균 씨(83)는 “배를 타고 한 달 걸려 1952년 10월 부산에 내렸다”며 “전혀 모르는 나라에 와서 목숨 걸고 싸웠는데 한국의 발전상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 터키가 준결승에서 붙었을 때 두 나라 모두 응원했다”며 “예전에는 일본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한국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덴마크 참전용사인 맥스 안데르센 씨(82)는 그의 아들 이름을 한국 성씨 ‘김’에서 따와 킴 안데르센으로 지었을 정도로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 3년 동안 세계 21개국에서 연인원 194만명의 용사가 참전해 4만여명이 전사했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참전용사와 그 가족은 각종 행사에 참석한 뒤 30일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정성택/홍선표 기자 naive@hankyung.com
열여덟 살에 6·25전쟁에 뛰어들었던 미국인 해리 벡호프 씨(78)는 전쟁을 잠시도 잊지 않았다. 60년 만에 다시 찾은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벡호프 씨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북한이 도발한 6·25전쟁이 ‘정전(停戰)’된 지 27일로 60년. 풋풋했던 벽안(碧眼)의 젊은이들은 이제 다리가 불편하고, 허리는 구부정했으며, 머리칼은 백발로 변했다.
스무 살 전후의 젊은 나이에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나라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싸웠던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터키 네덜란드 등 6·25전쟁 참전 ‘백발의 영웅’들이 25, 2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잇달아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정전 60주년 관련 각종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60년 전에 비해 그야말로 ‘천지개벽’한 모습이었다. 1953년 미 공군 605 전술통제 비행중대에서 통신병으로 참전한 벡호프 씨는 “한국은 지난 60년간 기적을 일궈냈다”며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해낸 한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숙소인 잠실롯데호텔월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벡호프 씨는 창 밖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참전 당시 한강에 다리가 1개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27개나 된다니 믿기지 않는다”며 서울의 고층 빌딩과 자동차를 보면서 ‘압도적이다(overwhelming)’는 감탄사를 연신 쏟아냈다. 벡호프 씨는 자신이 미국에서 쓰는 LG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며 집에 있는 TV 3개는 모두 삼성 제품이라고 말했다.
터키 참전용사 투란 초크메드 씨(85)는 한국전을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한국이란 나라가 공산주의의 위협을 받는다고 해서 자원해 참전했다”며 “중공군이 밀려왔을 때 최선봉에서 싸웠다”고 회상했다.
또 “탄환이 코를 스치고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어 치료를 위해 터키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싸웠다”며 “한국은 제2의 조국”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 고아들이 초콜릿을 달라고 따라오고는 했는데 이렇게 부강해졌다니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참전후 아들 이름 킴으로 지어"
역시 터키 참전용사인 메흐멧 므스르 씨(81)는 “한국전에 참전해 지킨 이 나라가 이 정도의 경제적 발전을 이뤘다는 걸 믿기 어렵다”며 “우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힐미 에르균 씨(83)는 “배를 타고 한 달 걸려 1952년 10월 부산에 내렸다”며 “전혀 모르는 나라에 와서 목숨 걸고 싸웠는데 한국의 발전상을 보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 터키가 준결승에서 붙었을 때 두 나라 모두 응원했다”며 “예전에는 일본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한국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덴마크 참전용사인 맥스 안데르센 씨(82)는 그의 아들 이름을 한국 성씨 ‘김’에서 따와 킴 안데르센으로 지었을 정도로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6·25전쟁 3년 동안 세계 21개국에서 연인원 194만명의 용사가 참전해 4만여명이 전사했다. 국가보훈처 초청으로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참전용사와 그 가족은 각종 행사에 참석한 뒤 30일 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정성택/홍선표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