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 씨가 25일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컵과 올해 나비스코챔피언십이 열린 18번홀 그린 옆 연못에서 떠온 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 씨가 25일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컵과 올해 나비스코챔피언십이 열린 18번홀 그린 옆 연못에서 떠온 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박인비(25·KB금융그룹)의 아버지 박건규 씨(51)가 운영하는 경기 안산 반월공단 내 페트(PET)병 부착 필름 제조업체 유래코. 이 회사 2층 복도에는 수십여개의 우승 트로피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박인비가 주니어 시절부터 받은 트로피와 홀인원 기념패,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컵도 보였다. 올해 초 나비스코챔피언십 우승 당시 18번홀 그린 옆 연못에서 떠온 물도 함께 전시돼 있다.

박씨는 기념패나 우승컵 등을 하나하나 모아오다 5년 전부터 사무실에 아예 ‘박인비 기념관’을 차린 셈이다. 그는 25일 “인비가 우승할 때마다 훗날 주려고 금 한 냥을 만들었다. 결혼할 때 금은 가져가도 좋지만 우승 트로피는 죽을 때까지 내가 소장하겠다고 일러놨다”고 말했다.

○입문 6개월 만에 홀인원

유래코는 박인비의 할아버지 박병준 씨(81)가 1969년 설립해 박건규 씨가 물려받아 올해로 44년째를 맞는 회사다. 박씨는 “예전부터 거래처에 ‘인비가 언젠가는 아니카 소렌스탐이나 로레나 오초아처럼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며 “요즘에는 내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서 더 많은 신뢰를 갖는다”고 말했다.

박인비가 어떻게 골프를 시작했는지 물었다. “박세리 선수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인비가 골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가족끼리 골프 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운 지 3개월 만에 대회에 나갔는데 애들끼리 경쟁하는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하더군요. 그때 최나연 오지영 김인경 박희영 등이 함께 뛰었어요. 그해 겨울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선수 수업을 했지요.”

박인비는 태국 전지훈련 첫날 홀인원을 기록했다. 입문 6개월 만이었다. 두 달간의 전지훈련이 끝나자 70타대를 쳤다. 주니어 시절 안양베네스트GC에서 2년간 훈련했다. 연습장에서 운영하는 아카데미에 등록한 뒤 오후에 9홀을 매일 돌았다. 박씨는 “당시만 해도 정보가 없어 다른 선수들이 무슨 장비를 쓰나 커닝해 가면서 클럽을 장만했다”고 회상했다.

○선수 생명 중단의 위기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간 박인비는 선수 생명 중단의 위기를 맞았다. “어느 날 손목이 계속 아프다고 하는 거예요. 손목 부위에 혹도 생기고요. 병원에 갔더니 손목 연결 부위가 다른 사람들보다 짧아 코킹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당시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데이비드리드베터아카데미에서 배웠는데 손목 코킹을 많이 요구하면서 무리했던 거죠. 의사들은 수술을 하거나 운동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고민하다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부치하먼아카데미로 옮겼다. 그곳에서는 손목 코킹은 건드리지 않고 다운스윙 위주로 레슨을 해줬다. “인비는 초등학교 때 현재의 스윙처럼 코킹 없이 바로 들어 업라이트하게 스윙을 했어요. 당시 ‘푸시업’을 해도 손목이 아파 남들처럼 손바닥을 편 채로 못 하고 주먹을 쥐고 했어요. 골프에 안 맞는 신체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나름대로의 스윙을 터득한 것 같아요.”

경기 용인 프라자CC에서 3언더파를 쳐봤을 정도로 ‘아마 고수’였던 그는 “인비는 ‘야디지 북’(거리 안내 책자)도 안 볼 정도로 골프를 심플하게 친다. 일단 캐디가 거리를 불러주면 자신의 감각을 믿고 샷을 한다. 퍼팅도 감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남기협 만나 ‘신바람 골프’

약혼자 남기협 KPGA 프로는 박인비가 먼저 쫓아다녔다고 한다. “일본에서 뛸 때 대회를 마치자마자 일요일 밤에 들어와 월요일 하루 있다가 일본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왜 자꾸 들어오나 싶었더니 그때마다 기협이를 만난 거예요. 기협이는 당시 골프장 경기과장이었는데 월요일이 휴무라 서로 잘 맞았던 거죠.”

둘의 ‘뜨거운’ 관계를 확인한 부모들은 2011년 8월 약혼식을 치르고 투어를 함께 다니도록 했다. 이후 박인비는 신바람이 났다고 한다. “기협이가 옆에서 스윙을 가르쳐주고 문제점을 바로잡아주면서 인비가 ‘이제 골프를 알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박인비는 지난해 8월 에비앙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4년간 이어져온 슬럼프에서 탈출했다. “인비가 우승한 뒤 ‘아빠 엄마, 골프 시켜줘 고마워’라고 말했어요. 골프 시키고 처음 들어본 얘기라 너무 뭉클해 하루종일 아내와 울었지요.”

○“살 좀 뺐으면 좋겠다”

박인비는 남기협과 친분이 두터운 김경태, 김비오 등 남자 프로들과 내기하면서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남자 프로들과 내기를 해 잃으면서 어깨너머로 샷을 배웠어요. 기술적인 샷, 어프로치샷 등이 업그레이드됐지요.”

박씨는 최근 메이저 3연승을 한 뒤 박인비의 부담이 커졌다고 한다. “1개 대회를 마치면 과거 2~3개 대회를 치른 것 같은 피로가 몰려온대요. 골프장에서 인터뷰에다 사인 공세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가 없다고 해요. 잘 쳐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겨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하고요. 타이거 우즈가 왜 많은 대회를 출전하지 않는지 알겠더군요.”

2006년 2부투어 시절 1년간 박인비와 차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그는 딸에게 한 가지 바라는 점을 물었더니 “살을 좀 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아직은 샷에 영향을 줄까봐 살을 빼지 못하지만 선수 생활 그만두면 20㎏쯤 빼서 예쁜 옷 입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