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막말 정치는 국민에 대한 죄악
우리 정치권의 언사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최근에는 ‘귀태(鬼胎)’라는 말이 국민의 지탄을 받은 바 있고 ‘당신’이라는 말이 존칭이라느니 아니라느니 시끄럽다. 귀태라는 말이 문제가 되는데 적어도 하루는 걸린 것으로 보아 그 단어를 평생 처음 듣는 사람이 필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언어는 상황과 대상에 따라 쓸 수도 있고 써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귀태라는 말도 박정희 전 대통령, 그것도 현 대통령의 아버지에 대해 사용한 것이 특별히 문제인 것 같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한 나라의 통수권자이고 얼굴일 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민이 지지한 사람만이 맡는다는 의미에서 대통령에 대한 욕설은 그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그가 통치하고 대표하는 나라와 국민에게 내뱉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언어가 수시로 정제되지 못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이 나라의 정치의식을 반영한다. 우리의 정치에서는 어느 대통령이든 누군가에게는 0점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100점이다. 한 인간의 업적이 보는 입장에 따라 0점과 100점으로 양분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교육을 받고 자라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승자는 패자를 아량으로 대하고, 패자는 승자에게 존경을 표하는 교육과 사회 분위기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홍콩에서 몇 년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중국 유학생 가운데 한 대학원생이 부는 휘파람의 곡조가 하도 처연해 그 학생에게 물으니 마오쩌둥이 국민당에 패해 대장정에 올랐을 때 지은 노래라는 것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마오쩌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60%는 잘했고 40%는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의 대답을 들었을 때의 신선함과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을 통일하고 굶주림으로부터 인민을 구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문화혁명과 같은 고통을 국민에게 준 것은 잘못한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에게 마오쩌둥은 0도 아니고 100도 아닌 60%인 것이다. 그때 생각한 것이 우리의 대통령들은 왜 40%, 50%, 아니면 60%로 평가될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한 인간이 완벽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한 존재이기도 어려운 것은 우리의 일상이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그 많은 의사결정을 해야만 하는 대통령이 모든 결정에서 완벽하거나 실패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지도자의 업적 가운데 기릴 것과 버릴 것에 대한 평가에 객관적이고자 노력하지 않는 정치인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돼 있다. 전직 대통령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리 그것이 위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업적 가운데 계승해야 할 40%, 50%, 아니면 60%를 무시할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이 나라의 정치가 끊임없이 같은 정쟁을 되풀이하는 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평가하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공방을 비롯 지금 진행되고 있는 거의 모든 정치적 논의에서 정치가 아닌 분파주의만을 보게 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치인들과는 달리 대부분 국민들은 전직 대통령들이 각각 몇 퍼센트인지 각자 잘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평가가 많은 경우에 객관적인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독재자나 친북주의자, 인기영합주의자라는 이유로 전직 대통령들을 0점으로 평가할 때 다수의 국민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국민의 생각과 다른 평가와 행동을 할 때 정치는 대중과 유리되고 소외되는 것이다.

정치의 소외는 결국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다. 피아의 장점을 계승하지 못하는 정치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치는 0 아니면 100의 제로섬 권력게임 이외에 다른 것이 못 되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획득한다고 해도 더 나은 나라를 만들지 못한다면 지금과 같은 국제경쟁 시대에 그것은 죄악이라는 인식을 정치인들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다. 두려운 것은 이와 같은 충고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이룬 민주주의의 대가가 이런 정치라면 허망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하기 어렵다.과연 배우고 개선하는 정치는 불가능한 것일까.

조장옥 <서강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