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에 막힌 은행장 > 이건호 국민은행장(왼쪽)이 22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열릴 예정이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노조원들에 막혀 난감한 듯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 노조에 막힌 은행장 > 이건호 국민은행장(왼쪽)이 22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열릴 예정이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노조원들에 막혀 난감한 듯 눈을 감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호 국민은행장 취임식이 국민은행 노조의 저지로 무산됐다.

이 행장은 22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취임할 예정이었으나 노조원 50여명이 진입을 가로막아 무산됐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미리 준비한 계란과 밀가루를 던지기도 했다.

이 행장이 계란 등을 직접 맞지는 않았지만 일부 내용물이 얼굴에 튀기도 했다. 은행 노조에서 은행장 취임 저지를 위해 계란 등을 던진 것은 이례적이다.

이 행장은 취임식을 포기한 직후 “이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은 불행한 일”이라며 “노조와 대화를 계속해 사태를 해결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으로 취임식을 갈음하겠다”며 “23일부터는 행장으로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건호 국민은행장, 노조 저지로 취임 무산…밀가루·계란까지 등장 '아수라장'

< 발길 돌리는 이 행장 >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취임식을 가지려고 했지만 계란과 밀가루를 동원한 노조의 실력행사에 가로막히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 발길 돌리는 이 행장 >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서 취임식을 가지려고 했지만 계란과 밀가루를 동원한 노조의 실력행사에 가로막히자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금융계에서는 “대표적 화이트칼라 노조인 은행 노조가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은행장의 취임식을 계란 등을 던지며 무산시킨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박병권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밀실 인사와 관치금융으로 국민은행장이 임명됐기 때문에 출근저지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건호 행장은 취임식 무산에도 불구하고 23일부터 정상적인 업무를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별도로 배포한 취임사에서 “고객과의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는 ‘스토리가 있는 금융’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취임식 전부터 ‘아수라장’

이 행장이 취임식을 갖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2일 오후 3시40분께. 본점에서 약 30m 떨어진 곳에서 내려 건물 앞으로 걸어왔다. 국민은행 노조는 오후 2시30분부터 본점 앞 로비에 집결해 농성을 벌였다.

이 행장이 청경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은행 진입을 시도했지만 노조원들은 “관치금융 낙하산으로 내려온 이건호 자진 사퇴하라” “이건호 박살내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이 행장의 건물 진입을 저지했다. 밀가루와 계란 등을 던지기도 했다. 이 행장은 계란 등을 직접 맞진 않았지만 일부 기자와 청경, 임직원들이 밀가루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 와중에 취재진과 노조원, 청경 등이 뒤엉키면서 고성이 오갔고 상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행장은 5분가량 건물 앞에서 노조원들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구호가 이어지자 발걸음을 돌렸다. 이 행장은 이날 아침에도 노조의 저지로 출근에 실패했다.

◆“스토리 있는 금융 만들 것”

취임식 참석을 위해 여의도 본점에 모였던 국민은행 임직원들은 노조의 행동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이 행장이 의외의 인사이며, 외부 출신인 것은 맞지만 노조의 행동이 국내 자산 1위 은행의 격에 맞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국민은행의 한 지역본부장은 “노조의 이 같은 행동은 국민은행의 이미지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이 행장은 취임식 무산 직후 가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취임식은 이것으로 갈음하고 행장으로서 정상적인 업무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 행장은 서울시내 모처에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이날 배포한 취임사를 통해 경영 목표의 우선순위로 자산건전성 강화, 공정한 인사와 상호신뢰하는 노사관계, 영업조직의 혁신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통합은행으로 출범한 지 1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출신 은행을 구분하고 이른바 ‘채널 안배’라는 명목하에 임직원 상호 간 갈등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지적,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간 갈등을 타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리딩뱅크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한 조건으로 ‘고객 중심의 철학’을 내세웠다. 그는 이를 위해 “고객별로 세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과의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자산건전성을 전제로 한 소매금융 강화도 내세웠다.

이 행장은 노조와의 대화는 계속 시도하기로 했다. 그는 “행장으로서 먼저 찾아가서 협조를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며 “한가족끼리 이런 모습을 보여 국민은행 고객들에게 부끄러운 마음뿐”이라고 밝혔다.

박신영 기자 nyus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