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준경 KDI 원장 "KDI도 변해야…국가 아젠다 개발에 사활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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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시절 새벽 4시에 출근
1997년 기업 부실채권 100조
'외환위기' 경고에 금융당국 발칵
예비타당성 조사…국책사업 부실막아
번지르르한 대책보다 집행이 더 중요
1997년 기업 부실채권 100조
'외환위기' 경고에 금융당국 발칵
예비타당성 조사…국책사업 부실막아
번지르르한 대책보다 집행이 더 중요
새마을운동 당시와 같은 국가적 리더십이 있어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국가적 리더십을 만나 성공한 사례다.
경쟁을 유도하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식을 경제 주체들에게 심어줘야 경제가 성장한다. “1884년 조선을 방문한 영국 왕립지리학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인을 ‘행정적 계기(국가적 리더십)’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유능한 리더만 있으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의미였죠. 새마을운동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국가적 리더십을 만나 성공한 사례입니다.”
19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사를 연구한 전문가다웠다. 새마을운동의 의미를 되짚는 대목에선 눈빛이 달랐다. 새마을운동에 관한 연구는 국내 최고 귄위자로 꼽히지 않는가.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신임 원장(57). 연구원으로 KDI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지난달 ‘한강의 기적’을 이끈 한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KDI의 총사령탑을 맡았다. 연구원이 수장 자리에 오른 건 KDI 설립 42년 만에 김 원장이 처음이다.
서울 제기동 KDI 인근 ‘삼성정육점식당’에서 만난 김 원장은 학자라기보다는 점잖은 신사의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 나누는 대화가 깊어질수록 뿜어져나오는 내공이 그런 분위기를 압도해버렸다. 온화한 표정 뒤로는 연구에 완벽을 추구하는 꼼꼼함이 엿보였다. 겸손한 그의 웃음과 말투는 십수년째 새벽 4시에 출근하며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한 당당한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고기 맛도 좋지만 지난 30년 동안 KDI 연구원들을 엄마의 손길로 가장 반갑게 맞아준 곳입니다. 1990년 KDI에 입사한 이후 줄곧 찾았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김 원장이 1주일에 몇 번은 찾는 곳이라며 수더분하게 소개한 삼성정육점식당은 KDI 직원들의 단골 회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겹살과 항정살, 그리고 멸치 김치찌개가 일품이다. 오겹살과 소주를 반주(飯酒)로 주문했더니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술은 잘 못합니다. KDI 원장에 선임되기 전에는 늘 저녁 9시께 자서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느라 술자리를 가능한 한 피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자리가 있으면 조금씩 마시는 ‘소셜드링커(social drinker)’ 수준입니다.”
‘아침형 인간’으로 한결같은 생활 패턴을 유지한 ‘정통 KDI 맨’이었으니 보람도 많았을 게다. 그는 외환위기가 터졌던 1997년 겨울로 시곗바늘을 돌렸다.
“7년차 연구원이었을 때죠. 8000개에 달하는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실제 부실 규모를 파악하라는 연구과제를 받았습니다. 당시 은행감독원이 추산한 부실 부채 규모는 1994년부터 줄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죠. 그런 안일한 대응이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연구였지만 저는 동료 연구원과 함께 휴일을 반납하면서 8개월 만에 끝냈습니다. 기업 부실채권 규모가 100조원을 넘었다는 우리 보고서가 나오자 청와대와 금융당국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김 원장이 가장 열정을 쏟은 연구 주제는 새마을운동이다. 최근까지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새마을운동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새마을운동 때와 같은 국가적 리더십이 있어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유도하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식을 경제 주체들에게 심어줘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건 그의 오랜 지론이다.
“새마을운동 사례를 보면 경쟁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전국 3만5000개 마을을 개선 성적에 따라 나눴어요. 1972년에는 이 중 절반이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4년 뒤에 평가를 다시 했을 때는 낙제점을 받은 마을이 한 개도 없었습니다. 비결은 간단했어요. 합격점을 받은 마을엔 시멘트 등을 지원해줬습니다. 뒤처진 마을 지도자는 우수 마을 지도자와 함께 교육하고, 직접 우수 마을을 방문해 경험을 전수받도록 했습니다. 뒤처진 마을에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고, 잘된 마을은 그대로 뒀다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김 원장은 오겹살이 익어가는 동안 입맛 돋우는 멸치 김치찌개를 먼저 달라고 했다. 멸치의 달짝지근한 맛과 2년 묵은 김치의 조화가 딱이었다. 이때다 싶어 그에게 다소 거북스러울 수도 있는 세간의 궁금증 하나를 끄집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부친(김정렴 씨)의 후광 덕분에 KDI 원장 자리까지 오르지 않았는지.
“사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인연이 많지 않습니다. 원장에 취임한 뒤 박 대통령과 따로 통화하거나 만난 적도 없고요. KDI 연구원으로 출발해 이 조직에서만 23년 동안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KDI에 대한 그의 애정은 김치찌개 국물만큼이나 진했다. 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수석이코노미스트 제도를 도입하고, 연구부서를 8개로 확대 개편했다. 연구부서를 세분화해 정책연구의 시의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바꾼 것이냐고 하자 그는 통렬한 자기반성부터 시작했다. KDI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그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최근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KDI도 변해야 합니다. 후배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연구용역보다는 개인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이죠. KDI는 국내 유일의 정부 출연 종합연구소입니다. 나무가 아닌 숲 전체를 보고 국가적인 아젠다(의제)를 이끌어낸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국제 공동연구 강화, 정책토론회 활성화, 연구관리·평가체계 개선 등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오겹살에 자꾸 젓가락이 가는 사이 KDI의 역할론으로 화제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재정이 부족해지면서 KDI가 수행하는 정부 국책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도 장기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을 예로 들었다.
“KDI가 14년 동안 실시하고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업무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일본 등 선진국에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세계은행 등이 부러워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은 인구 100명이 사는 작은 섬에 부두를 6개나 만들기도 했죠. 한국에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KDI가 수행한 630건의 예비타당성 조사 가운데 38%는 ‘타당성 없음’으로 판명났습니다. 사전에 공사가 차단된 것입니다.”
일본 경제 얘기가 나오자 김 원장은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저성장 기조로 빠져드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정부가 백화점식 대책을 내놓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정책 집행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지만 파행으로 치닫고, 초·중·고는 ‘잠자는 교실’로 변해 있습니다. 선진국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와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번지르르한 대책보다 집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은 5%, 집행에 95%의 힘을 쏟아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부 정책을 겨냥한 쓴소리는 계속됐다. 경기 침체로 인한 성장률 하락이 세수 부족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걱정했다. 이제는 세금이 왜 잘 안 걷히는가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해졌다고 주장했다.
“국가 정책을 수립하려면 우선 세입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1966년 국세청 창설을 계기로 세금이 5년간 평균 51%씩 늘었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빈곤의 악순환에서 경제 발전으로 가는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세정 개혁으로 재정이 건전해지고 정책을 집행할 여력이 생긴 것입니다. 세금을 어떻게 걷을지가 증세를 논의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장착해야 할 신성장동력은 무엇일까. 김 원장은 경쟁과 교육을 통한 중소기업 육성이 첫 번째 과제라고 제시했다.
“뒤처지는 중소기업에 무조건적인 금전 지원보다는 승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교육을 시켜줘야 합니다. 교육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다시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계층이 성과에 따라 혜택을 누리는 ‘포용적 경제성장’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약자를 보호해준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 사회는 영영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준경 원장의 단골집 '삼성정육점식당' 2년 묵은 김치로 만든 찌개 국물 맛 일품
한국개발연구원(KDI) 정문 앞(제기동 1144의 3)에 있는 고깃집이다.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를 나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보인다. 정육점 안쪽에 자리잡은 식당 안에는 테이블이 10개밖에 없어 오후 7시쯤 가면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1984년에 개업, KDI와 한국국방연구원(KIDA) 직원들의 회식 장소로 유명하다. 이 식당에서 고기와 불판 등을 가져다 연구원 내 잔디밭에서 고기파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점심에는 멸치 김치찌개(5000원)와 된장찌개(5000원)를 내고, 저녁에는 오겹살(2인분 2만원), 등심(2인분 3만5000원) 등을 판다. 고기는 충북 음성 축협에서 30년째 가져온다. 껍질 부분이 쫀득한 오겹살은 이 식당의 메인 메뉴다. 김치찌개는 2년 이상 묵은 김치로 만들어 국물 맛이 진하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는 식당 위치가 잘 검색되지 않는다. 식당 전화(02-963-6508)로 물어보면 위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예약도 가능하다.
정리=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새마을운동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국가적 리더십을 만나 성공한 사례다.
경쟁을 유도하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식을 경제 주체들에게 심어줘야 경제가 성장한다. “1884년 조선을 방문한 영국 왕립지리학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한국인을 ‘행정적 계기(국가적 리더십)’만 주어지면 무서운 자발성을 발휘하는 국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유능한 리더만 있으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의미였죠. 새마을운동은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이 국가적 리더십을 만나 성공한 사례입니다.”
19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사를 연구한 전문가다웠다. 새마을운동의 의미를 되짚는 대목에선 눈빛이 달랐다. 새마을운동에 관한 연구는 국내 최고 귄위자로 꼽히지 않는가.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신임 원장(57). 연구원으로 KDI에 발을 들여놓은 그가 지난달 ‘한강의 기적’을 이끈 한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KDI의 총사령탑을 맡았다. 연구원이 수장 자리에 오른 건 KDI 설립 42년 만에 김 원장이 처음이다.
서울 제기동 KDI 인근 ‘삼성정육점식당’에서 만난 김 원장은 학자라기보다는 점잖은 신사의 이미지를 물씬 풍겼다. 나누는 대화가 깊어질수록 뿜어져나오는 내공이 그런 분위기를 압도해버렸다. 온화한 표정 뒤로는 연구에 완벽을 추구하는 꼼꼼함이 엿보였다. 겸손한 그의 웃음과 말투는 십수년째 새벽 4시에 출근하며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한 당당한 자신감의 다른 표현이었다.
“고기 맛도 좋지만 지난 30년 동안 KDI 연구원들을 엄마의 손길로 가장 반갑게 맞아준 곳입니다. 1990년 KDI에 입사한 이후 줄곧 찾았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김 원장이 1주일에 몇 번은 찾는 곳이라며 수더분하게 소개한 삼성정육점식당은 KDI 직원들의 단골 회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겹살과 항정살, 그리고 멸치 김치찌개가 일품이다. 오겹살과 소주를 반주(飯酒)로 주문했더니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술은 잘 못합니다. KDI 원장에 선임되기 전에는 늘 저녁 9시께 자서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느라 술자리를 가능한 한 피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자리가 있으면 조금씩 마시는 ‘소셜드링커(social drinker)’ 수준입니다.”
‘아침형 인간’으로 한결같은 생활 패턴을 유지한 ‘정통 KDI 맨’이었으니 보람도 많았을 게다. 그는 외환위기가 터졌던 1997년 겨울로 시곗바늘을 돌렸다.
“7년차 연구원이었을 때죠. 8000개에 달하는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실제 부실 규모를 파악하라는 연구과제를 받았습니다. 당시 은행감독원이 추산한 부실 부채 규모는 1994년부터 줄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죠. 그런 안일한 대응이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연구였지만 저는 동료 연구원과 함께 휴일을 반납하면서 8개월 만에 끝냈습니다. 기업 부실채권 규모가 100조원을 넘었다는 우리 보고서가 나오자 청와대와 금융당국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김 원장이 가장 열정을 쏟은 연구 주제는 새마을운동이다. 최근까지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새마을운동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새마을운동 때와 같은 국가적 리더십이 있어야 경제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유도하고, ‘공짜 점심은 없다’는 인식을 경제 주체들에게 심어줘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건 그의 오랜 지론이다.
“새마을운동 사례를 보면 경쟁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정부는 전국 3만5000개 마을을 개선 성적에 따라 나눴어요. 1972년에는 이 중 절반이 낙제점을 받았습니다. 4년 뒤에 평가를 다시 했을 때는 낙제점을 받은 마을이 한 개도 없었습니다. 비결은 간단했어요. 합격점을 받은 마을엔 시멘트 등을 지원해줬습니다. 뒤처진 마을 지도자는 우수 마을 지도자와 함께 교육하고, 직접 우수 마을을 방문해 경험을 전수받도록 했습니다. 뒤처진 마을에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고, 잘된 마을은 그대로 뒀다면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김 원장은 오겹살이 익어가는 동안 입맛 돋우는 멸치 김치찌개를 먼저 달라고 했다. 멸치의 달짝지근한 맛과 2년 묵은 김치의 조화가 딱이었다. 이때다 싶어 그에게 다소 거북스러울 수도 있는 세간의 궁금증 하나를 끄집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부친(김정렴 씨)의 후광 덕분에 KDI 원장 자리까지 오르지 않았는지.
“사실 박근혜 대통령과는 인연이 많지 않습니다. 원장에 취임한 뒤 박 대통령과 따로 통화하거나 만난 적도 없고요. KDI 연구원으로 출발해 이 조직에서만 23년 동안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KDI에 대한 그의 애정은 김치찌개 국물만큼이나 진했다. 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수석이코노미스트 제도를 도입하고, 연구부서를 8개로 확대 개편했다. 연구부서를 세분화해 정책연구의 시의성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동안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바꾼 것이냐고 하자 그는 통렬한 자기반성부터 시작했다. KDI는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그 역할이 줄어들었다는 최근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KDI도 변해야 합니다. 후배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연구용역보다는 개인연구를 하고 싶어하는 후배들이 많습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는 것이죠. KDI는 국내 유일의 정부 출연 종합연구소입니다. 나무가 아닌 숲 전체를 보고 국가적인 아젠다(의제)를 이끌어낸다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국제 공동연구 강화, 정책토론회 활성화, 연구관리·평가체계 개선 등의 혁신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오겹살에 자꾸 젓가락이 가는 사이 KDI의 역할론으로 화제가 이어졌다. 김 원장은 재정이 부족해지면서 KDI가 수행하는 정부 국책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도 장기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던 일본을 예로 들었다.
“KDI가 14년 동안 실시하고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업무에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일본 등 선진국에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세계은행 등이 부러워하는 제도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은 인구 100명이 사는 작은 섬에 부두를 6개나 만들기도 했죠. 한국에서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야 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KDI가 수행한 630건의 예비타당성 조사 가운데 38%는 ‘타당성 없음’으로 판명났습니다. 사전에 공사가 차단된 것입니다.”
일본 경제 얘기가 나오자 김 원장은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저성장 기조로 빠져드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정부가 백화점식 대책을 내놓기에 급급할 게 아니라 정책 집행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어린이집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지만 파행으로 치닫고, 초·중·고는 ‘잠자는 교실’로 변해 있습니다. 선진국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와도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습니다. 번지르르한 대책보다 집행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은 5%, 집행에 95%의 힘을 쏟아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부 정책을 겨냥한 쓴소리는 계속됐다. 경기 침체로 인한 성장률 하락이 세수 부족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걱정했다. 이제는 세금이 왜 잘 안 걷히는가에 대한 연구가 더 중요해졌다고 주장했다.
“국가 정책을 수립하려면 우선 세입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1966년 국세청 창설을 계기로 세금이 5년간 평균 51%씩 늘었습니다. 이는 한국 경제가 빈곤의 악순환에서 경제 발전으로 가는 ‘터닝포인트’가 됐습니다. 세정 개혁으로 재정이 건전해지고 정책을 집행할 여력이 생긴 것입니다. 세금을 어떻게 걷을지가 증세를 논의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이 장착해야 할 신성장동력은 무엇일까. 김 원장은 경쟁과 교육을 통한 중소기업 육성이 첫 번째 과제라고 제시했다.
“뒤처지는 중소기업에 무조건적인 금전 지원보다는 승자를 따라잡을 수 있는 교육을 시켜줘야 합니다. 교육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다시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계층이 성과에 따라 혜택을 누리는 ‘포용적 경제성장’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약자를 보호해준다면 대기업 중심의 한국 사회는 영영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준경 원장의 단골집 '삼성정육점식당' 2년 묵은 김치로 만든 찌개 국물 맛 일품
한국개발연구원(KDI) 정문 앞(제기동 1144의 3)에 있는 고깃집이다.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를 나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보인다. 정육점 안쪽에 자리잡은 식당 안에는 테이블이 10개밖에 없어 오후 7시쯤 가면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1984년에 개업, KDI와 한국국방연구원(KIDA) 직원들의 회식 장소로 유명하다. 이 식당에서 고기와 불판 등을 가져다 연구원 내 잔디밭에서 고기파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점심에는 멸치 김치찌개(5000원)와 된장찌개(5000원)를 내고, 저녁에는 오겹살(2인분 2만원), 등심(2인분 3만5000원) 등을 판다. 고기는 충북 음성 축협에서 30년째 가져온다. 껍질 부분이 쫀득한 오겹살은 이 식당의 메인 메뉴다. 김치찌개는 2년 이상 묵은 김치로 만들어 국물 맛이 진하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는 식당 위치가 잘 검색되지 않는다. 식당 전화(02-963-6508)로 물어보면 위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예약도 가능하다.
정리=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