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이냐…회생이냐…부실기업 운명 거머쥔 기업회생제도
최근 ‘샐러리맨의 신화’를 쓰며 10년 만에 재계서열 13위로 올라선 STX가 좌초 위기를 맞았다. 계열사와 관련 은행들에까지 파장이 미치고 있다. 항간에서는 위기의 원인을 공격적 인수합병(M&A)에서 찾고 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STX의 급성장 비결이 ‘공격적 M&A’였지만, 오히려 그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것이다. STX는 자금을 빌려 기업을 인수한 다음 사업을 빠르게 성장시켜 수익을 내고, 이 돈으로 빌린 자금을 갚아나가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려왔다.

2000년 태동한 STX그룹은 같은 해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현 STX조선)을 시작으로 2002년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2004년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을 차례로 인수했다. 당시 대동조선과 범양상선의 인수 자금은 각각 1000억원과 4000억원에 달했다. STX는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인수 기업의 지분 일부를 다른 투자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수천억원에 달하는 인수 자금을 충당했다. 이후 인수 기업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새로운 기업 인수를 위한 ‘실탄’을 준비했다. 2008년 인수한 아커야즈(현 STX유럽)의 인수 비용 8000억여원은 현금이 많은 STX엔진과 STX조선 자금으로 전액 조달했다.

STX의 이런 성장 방식은 2008년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주력 사업인 조선과 해운이 호황을 구가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각 계열사의 수익성이 하락하면서 재무 상태가 나빠졌다. 만약 이대로 STX가 사라져버린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한 기업이 사라진다면 단순히 그 기업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와 주주들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STX의 경우 각각의 계열사를 둘러싼 관계사들과 채권 은행, 그리고 이 관계사의 직원들과 가족 등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져갈 수밖에 없다.

#부실기업 파산이냐, 회생이냐

대안은 통합도산법에 의한 기업회생제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일명 ‘법정관리’라고도 부르는 이 제도는 부도를 내고 파산 위기에 처한 기업의 회생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 법원의 결정에 따라 제3자가 자금을 비롯한 기업활동 전반을 대신 관리하는 제도다. 법정관리 기업으로 결정되면 부도를 낸 기업주의 민사상 처벌이 면제되고, 모든 채무가 동결된다. 채권자는 그만큼 채권 행사의 기회를 제약받는다.

법원이 회사나 주주 또는 채권자로부터 법정관리 신청을 받으면 법정관리의 합당 여부를 심의하게 되는데, 보통은 3개월 정도가 걸린다. 법원이 만약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하면 파산 절차를 밟게 되거나, 항고·재항고할 수 있다.

법원이 신청을 기각하는 이유에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기업회생절차 비용을 납부하지 않은 경우다. 통상적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예납금이다. 예납금의 경우 자산총액에 따라 규모가 결정된다. 자산총액이 50억원 미만일 경우 1500만원을 법원에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법원에 따라 이 예납금에 가산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회생절차를 진행할 때 성실성의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회생절차를 개시했더라도 이를 기각할 수 있다. 이따금 회생제도를 악용해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죄로 처벌받는 것을 면하기 위해 중지명령, 보전처분의 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회생제도를 기업 운영을 위한 전략으로 사용하는 경우 회생절차의 의도를 감추고 다액의 현금을 보유하거나 원재료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상태에서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법원은 제3자를 속여 이득을 얻을 목적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불성실’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기업회생절차, 8개월 정도 소요


기업회생은 일반적으로 신청, 보전처분 및 예납명령, 대표자 심문 및 현장검증, 기업회생절차 개시 결정과 관리인 선임, 채권·채무 확정, 자산실태조사와 기업가치평가, 관계인 집회, 회생계획안 작성 및 제출 등의 단계를 거친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면 법원은 해당 기업이 사업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재산이 흩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전처분 및 중지명령, 포괄적 금지명령을 발동해 채권자들의 개별적 권리행사를 막고 채무자도 법원의 허가 없이 채무를 변제할 수 없도록 한다. 이후 자산의 규모를 근거로 책정되는 예납금을 납부하면 기업회생 개시 결정을 위해 대표자 심문과 현장검증 절차를 진행한다.

해당 기업이 천천히라도 수익을 내서 채권자들의 빚을 갚고 정상화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개시 결정을 내리고 법정관리인을 선임, 회생절차에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채권·채무를 확정해야 한다. 해당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야 할 채권자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액수는 얼마인지를 법원에 정확히 신고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만 변제하기로 한다는 확정을 짓는 것이다.

이후에는 기업의 재산 상태와 기업가치에 대한 평가를 거쳐 어떻게 빚을 갚고 기업을 정상화할 것인가에 대한 회생계획을 제출, 관계인들의 동의를 얻어 영업을 지속한다. 회생절차 인가가 나는 데는 대략 8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법원으로부터 인가가 결정되면 10년에 걸쳐 빚을 갚고, 일부 부채는 주식으로 전환돼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에 따라 경영 리스크는 줄이면서 수익성은 높아지게 된다.

#회생기업의 구원투수, M&A


법정관리 기업이 회생절차를 온전히 마치고 정상화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 기나긴 여정을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회생기업을 M&A하는 것이다. 채권자들과의 합의를 거쳐 빚을 나눠 갚기로 하고 회생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비용구조 때문에 단기간에 그 과정을 끝낼 수가 없다. 정상적인 영업 상태로 돌아섰다고 할지라도 직원들의 급여와 경상경비, 원재료 매입비 등의 비용을 지급하고 나면 채권자들과 약속한 이자와 원금을 갚기가 빠듯하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빚을 다 갚아주고 대신 경영권을 갖기로 한다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나드리화장품(주)이 그 예다.

1978년 설립된 화장품 제조·판매회사 나드리화장품은 1990년대 중반 ‘이노센스’ 등의 브랜드로 성장하다가 2000년대 들어 매출이 줄고 차입금 상환 부담이 늘면서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5부(수석부장판사 이종석)는 최근 나드리화장품에 대해 회생절차를 종결하기로 결정했다.

파산이냐…회생이냐…부실기업 운명 거머쥔 기업회생제도
그 이유는 나드리화장품이 지난해 11월23일 개인투자자 조모씨와 체결한 M&A 투자계약에 따른 인수대금 111억원으로 회생담보권과 회생채권을 상당 부분 변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드리화장품은 지난해 2월21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뒤 약 16개월 만에 기업회생절차를 졸업, 정상 기업으로 시장에 복귀하게 됐다.

법원 관계자는 “당초 회계법인의 조사 결과 회사의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를 초과해 청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법원 회생절차 안에서 추진한 M&A 투자계약을 통해 신규 자금 조달에 성공함으로써 채권자, 회사, 근로자 모두에 이익을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창헌 <한국M&A투자협회장·아시아M&A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