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이후 무려 13년 동안 추세적으로 상승세를 유지해 왔던 국제 금값이 최근 들어 장중한때 온스당 1200달러 마저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올 2분기 하락폭이 무려 26%에 달해 1971년 닉슨의 금 태환 정지 선언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금값 폭락 사태가 차기 ‘금융위기 전주곡’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금값 움직임에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금값과 채권수익률은 ‘정(正)의 상관관계’를 가져야 하나 최근에는 ‘부(負)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등 정형적인 사실이 흐트러지고 있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2011년까지는 미국 경기가 디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로 안 좋은 상황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양적완화 정책이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야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혼재돼 금값이 오르고 국채수익률은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 경기 회복세가 완만한 가운데 양적완화로 풀린 돈으로 증시가 비이성적 과열을 보이자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금값은 폭락세를 보이고 국채수익률은 급등세로 돌아섰다. 이런 현상을 두고 쉬로더 증권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케이스 웨이드는 ‘투자자들이 정신분열증세(schizophrenia)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종전의 관행을 뒤엎을 정도로 비이성적인 금값 폭락 사태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버냉키 의장의 출구전략 언급이 선진국과 개도국 자금 간에 치열하게 전개돼 왔던 ‘쩐의 전쟁(global money game)`¹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쩐의 전쟁’은 사람의 생장곡선에서 유래된 ‘S자형 투자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한 제품이 시장을 10%를 점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이후 90%를 점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같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이다.



금융위기 이후 ‘쩐의 전쟁’에서 나타난 새로운 움직임은 선진국에서 위기가 발생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돈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많이 풀렸다는 점이다. 이 돈이 신흥국으로 유입됐지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자산의 안정성이 종전만 못해 신흥국에서 방출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신흥국 자산가격은 경제여건에 비해 크게 올랐다.

특히 투자자 성향도 안전자산에 쏠려 있었지만 이번에는 안전한 국가로 평가받던 선진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관계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 대상이 의외로 적었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이후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돼 왔던 금을 비롯한 귀금속과 미국 등 선진국 국채에 자금이 몰리면서 거품이 심하게 발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버냉키 의장의 출구전략 추진 언급으로 미국의 시장금리가 일제히 오르면서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임에 따라 금값이 추락하는 단초로 작용했다. 브레튼 우즈체제 이후 국제 금 거래가 달러 표시로 이루어지고 있어 전통적으로 미 달러화와 금은 강한 대체관계가 형성돼 왔다.

특히 달러 약세기보다 강세기에 금값과의 대체관계가 더 뚜렷해지는 비대칭성이 있어 최근처럼 달러 위상이 회복될 때에는 금값의 하락속도가 빨라졌다. 출구전략 추진 발언으로 양적완화 추진 이후 금 매입에 열을 올려왔던 민간뿐만 아니라 각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보유 금을 처분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앞으로 출구전략이 추진돼 돈이 회수될 경우 미국 금융사들은 자금부족에 따른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부족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디레버리지(deleverage·기존 투자자산 회수)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기 이후 거품이 끼거나 수익이 난 정도를 감안하면 본격적으로 디레버리지 국면에 들어간다면 권역별로는 선진국보다 신흥국 자산에서 자금이 이탈될 가능성이 높다.



거품이 낀 정도로 본다면 금값이 가장 많이 끼었기 때문에 이번에 투자자들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금값의 하락폭이 컸던 배경이다. 과거 거품이 형성돼 붕괴된 몇 가지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이번 추락사태 이전까지 금값의 상승속도는 비슷한 추세를 보였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 거품붕괴 모형으로 잘 알려진 ‘하이먼 민스키 모형’에 따르면 거품이 낀 금값은 ‘어느 날 갑자기’ 붕괴될 수 있다고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향후 금값의 움직임을 읽기 위해서는 내년 1월말 임기를 앞두고 있는 버냉키 의장의 입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전폭적으로 지지를 받았던 버냉키 의장의 입지가 올 하반기에는 급격히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후임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오바마 정부가 버냉키 의장의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약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버냉키 의장의 입지를 감안하면 실행에 옮기기까지는 난항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출구전략 추진 여부도 금값 향방에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명한 것은 출구전략은 ‘위기극복과 경기회복’이라는 본질은 흐트러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출구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증시와 경기, 금을 비롯한 원자재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증시와 경기, 금을 비롯한 원자재 시장을 안정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금값 폭락 사태를 계기로 제기되는 극단적인 비관론이 가시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재테크 생활자들도 기존 투자상품의 대안투자(혹은 대체투자)로 골드 뱅킹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져 왔다. 대안투자라 하는 것은 전통적인 주식, 채권을 대체할 수 있는 투자수단을 의미한다. 앞으로 대안투자가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는 것은 전통적인 투자수단이 비해 상대적으로 수익률이 높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값의 폭락 사태를 계기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스위트 스폿’으로 추천해 왔던 금 투자가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글로벌 스위트 스폿’이란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 골프 드라이버 클럽 등에서 공이 정확하게 맞을 경우 가장 빠르게, 가장 멀리 이상적으로 날아가는 최적의 타격점을 말한다.



향후 예상되는 금값 전망 등을 감안하면 특히 재테크 관점에서는 ‘글로벌 스위트 스폿’으로 금 투자는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금값 변동의 가장 큰 요인인 달러화 위상은 금값이 치밀 만큼 제2의 중심통화로 전락할 가능성보다 브레튼 우즈체제가 부활할 만큼 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값 결정도 금 시장 자체적인 특성보다 달러 가치, 경기, 시장참여자 심리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돼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금과 관련된 파생상품도 다른 원자재 금융상품과 마찬가지로 최근 월물로 편입돼야 하기 때문에 가격상승폭만큼 실효수익률이 나오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권유받고 투자했던 금이 그 어느 재테크 수단보다 가격변동 폭이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온 점을 곰곰이 따져봐야 할 때다.

<글.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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