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금융소비자보호원 독립·분리해야 하나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지난달 21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태스크포스(TF)’가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를 금융감독원 내에 준독립기구로 설립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발표한 데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분리에 대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금융소비자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금감원에서 금소원을 분리해 독립기구화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금융위와 금감원도 금소원 분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감원을 건전성감독기구와 소비자보호기구(영업행위 감독 포함)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2011년 이후 저축은행의 대규모 영업정지로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국회와 학계 등에서 본격화됐다.
분리론자들은 금감원 내에 금소처를 존치시키는 것으로는 독립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고, 금감원이 건전성 감독에 치중하게 돼 소비자보호가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가 상충하는 만큼 금감원에서 소비자보호와 영업행위 감독업무를 떼어내 ‘쌍봉형(twin peaks)’ 체계로 금감원을 개편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한 반대론자들은 검사 부담 증가, 양 기관 사이의 갈등 소지 등을 들어 금소처를 금감원 내에 두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주장을 편다. 호주 네덜란드 영국 등 3개국에서 쌍봉형 감독체계를 도입하긴 했지만 이는 각국의 금융환경, 정치적 상황, 역사적 배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기구를 분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쌍봉형을 도입한 사례는 없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번 주 맞짱토론에서는 금소원 분리에 대한 찬반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찬성 - 금융감독 독점 구조에선 소비자보호 기능 약해져
통상 우리는 어떤 일이 잘못될 때 결국 ‘사람이 문제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성을 원하는 방향대로 고치기 쉽겠는가? 사람의 심성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제도 변화를 통해 사람들의 유인과 행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일지도 모른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도 변화를 통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현행 제도가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면 그 제도 역시 인류가 만든 것이니만큼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 역시 이런 맥락에서 논의해볼 수 있겠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금융감독체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제도는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금융소비자 보호가 금융산업에서 주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것은 국민경제에서 금융거래의 중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국민들은 노후 대비를 위한 방법의 하나로 연금 등 다양한 금융자산을 보유하기 시작했으며, 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해 왔다. 1998년 30% 미만이던 은행의 가계대출 비중은 현재 40%를 훨씬 웃돌고 있으며, 기관투자가 중심인 펀드시장도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변화했다.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 최근 1년 뚜렷한 성과 없어
문제는 금융소비자 피해가 그 이상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금융시장의 행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저축의 대부분이 예금으로 이뤄졌던 환경에서, 예금으로 인한 손실은 은행이 건전하고 튼튼하다면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위험관리 기법 발전은 다른 양상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자신이 부담을 짊어지는 예금 대신 금융소비자에게 위험을 전가시키는 펀드와 변액보험과 같은 금융상품 판매를 확대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유익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금융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이해 상충 문제가 빈번히 나타나게 됐다.
그러나 현행 금융감독체계는 이런 금융소비자 피해를 완화시키는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현행 금융감독체계에서는 금융감독 기능이 금융산업정책이나 거시정책에 의해 희생돼 왔다. 우리가 경험했던 신용카드 사태나 저축은행 문제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이들 금융산업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경우 금융감독 기능이 건전성 감독에 치중돼 있어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후순위채 발행을 허용했지만, 기관투자가도 매수하지 않는 후순위채를 금융회사가 개인들에게 파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요컨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 간 이해 상충, 건전성 감독 기능과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의 이해 상충이 바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미약하게 만든 원인인 것이다. 제도적으로 이것은 금융감독체계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독점적인 체계인 것에서 비롯된다.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독점하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단기적인 정책 목적으로 인해 감독정책을 희생시켜 왔다. 금융감독 집행 기능을 통합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금감원은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목적에 치우쳐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소홀히 해왔다. 그러므로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의 분리, 그리고 건전성 감독기능으로부터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의 분리를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설립은 한편에선 금융위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하며, 다른 한편에선 금감원과 대등한 관계를 갖는 금융감독기구로의 분리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독립과 분리 설립에 대한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감독기구 분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굳이 분리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는 반론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금감원에 소속된 금융소비자보호처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금감원 내부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입증하고 있다. 필자는 금융소비자 보호는 어떤 이유로도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국, 금융사 건전성만 초점 공급자 중심 구조 바꿔야
금융감독기구의 분리가 금융비용을 증가시켜 금융 발전을 저해시키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금융회사 이익의 상당수가 정부에 의한 과도한 보호에 힘입은 바 컸다고 판단한다. 이런 보호환경이 금융업이 제조업에 비해 현격히 낙후된 요인의 하나였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로 인해 금융회사의 비용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과거 불균형한 이익을 금융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금융감독체계 재론 지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분리만을 강조하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중요한 과제인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의 분리가 소홀히 될 가능성이다. 이런 우려가 일부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분리를 반대하는 근거가 되고 있음을 박 대통령은 인식하기를 바란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이 관치금융 및 공급자 중심의 금융구조를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추진돼야 함을 재삼 강조한다.
반대 - 관치 심해지고 비용만 증가…감독체계 개편 핵심 아니다
정부의 감독체계 개편작업이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로 최종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개편의 핵심을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과거로 눈을 돌려보자. 1998년의 감독체계 개혁은 실로 획기적이었다. 당시 외환위기를 불러온 관치금융을 일거에 청산해야 한다는 온 국민의 염원이 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떠한가. 전·현직 금융관료의 인적 네트워크(모피아)가 정책은 물론 기관 경영과 시장 작동까지 좌우하는 가운데 관치금융이 도처에 번성한 상태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 금융감독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나라 감독시스템은 일찍이 2000년대 초부터 궤도를 벗어났다. 이는 금융감독의 머리(정책수립)인 금융위원회(정부 조직)와 몸통(집행)인 금융감독원(비정부 공법인조직)이 분리된 기형적 감독구조 탓이다. 감독정책과 집행은 유기적 일관성이 생명인데, 두 업무를 서로 다른 기관에 갈라놓은 것부터가 무리수였다. 예나 지금이나 머리와 몸통은 조직문화가 서로 달라 걸핏하면 다투기 일쑤고, 유사시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어렵다. 이런 이원 감독구조의 틈새를 관치세력이 비집고 들어와 감독지배구조(감독독립성·책임성)를 각종 왜곡으로 오염시켰다. 그 결과 감독이 경기정책(내수부양)에 종속되면서 2003년 신용카드사태가 빚어졌다.
감독업무 단절 고려 안한 외양 위주의 ‘땜질 처방’
감독이 관치에 일단 길들여지면 정치적 영향에 민감해지고 금융(산업)정책에도 종속된다. 2011년 불거진 저축은행 사태도 그런 일례다. 요컨대 관치에서 비롯된 감독의 정책적·정치적 종속성으로 지난 세월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금융소비자는 다같이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관치를 다스리고 감독지배구조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감독 개편의 핵심과제다. 구체적으로 머리와 몸통을 합쳐 하나의 감독당국(비정부 공법인조직)으로 단일화하고, 금융정책권을 떼어내 기획재정부로 이관함으로써 감독당국은 감독에만 전념해야 한다.
문제는 관치가 시스템 내부에 단단히 터를 잡은 오늘의 현실에서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재부·금융위·금감원 등 관련 당국 간 기존 권한의 재배분은 물론 기관통폐합까지 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만큼 정부와 국회에 다같이 매력적인 소재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는 크게 뒤처져 있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금소원을 분리하자는 생각이 그래서 제기된다. 금소원 분리론에는 이론적 기반도 있다. 건전성감독과 시장행위감독(소비자보호감독)을 분리해 두 감독당국에 하나씩 맡기자는 쌍봉모형론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위는 금감원(건전성감독)과 금소원(시장행위감독)을 둘 다 거느리게 된다. 금융관료들도 내심 바라던 바다. 그러니 정부와 국회 입장에서 금소원 분리만큼 생색내기도 좋고 추진하기도 쉬운 데다 이론 배경까지 갖춘 개편 메뉴가 또 어디 있으랴. 하지만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빠지기 쉬운 ‘감독모형 선택의 함정’이다.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감독 개편의 핵심과제인 관치 청산과 감독종속성 탈피는 특정 감독모형의 선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소비자보호만 놓고 보더라도 그 후진성은 금소원이 분리되지 않아서라기보다 감독이 관치와 정치에 휘둘려 온 데에 주된 원인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소원 분리(쌍봉모형 채택)로 소비자보호가 개선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올바른 개편 없이는 어떤 모형이든 관치와 감독종속성에 오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금소원 분리는 다음 세 가지 이유로 국민경제에 겹겹이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소비자보호는 공짜점심’이란 사회적 환상 심어줄 수도
첫째, 금소원 분리로 쌍봉모형이 도입되면 현행 통합모형에 비해 더 많은 유지비용이 들 것이다. 건전성감독과 시장행위 감독은 충돌하기보다 상승작용한다. 상충을 중시해 금소원을 금감원에서 분리해낸다고 상충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며, 분리된 두 감독업무가 서로 단절되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 이는 분리된 두 기관 사이에 감독의 상호조정과 소통이 늘 필요함을 의미한다.
결국 금소원 분리는 상시적 조정비용의 상승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관 간 조정에 특히 미숙하다. 또한 감독기관 수가 늘면 고정비용과 감독인력이 자연스레 증가한다. 이 모두가 쌍봉모형의 유지비용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둘째, 금소원 분리 위주의 개편이라면 관치 및 감독종속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규모와 권한이 분화된 두 감독기구(금감원·금소원)에 대한 관치 및 정치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민경제적 폐해가 증폭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셋째, 분리된 금소원으로 소비자보호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환상과 기대가 집중되는 경우 소비자보호가 지속 가능한 수준을 훌쩍 넘어 오버슈팅할 우려가 있다. 이는 소비자보호를 서민과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복지 정책쯤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와 관련된 우려다. 소비자보호는 공짜 점심이 아니며 그 부담은 결국 온 국민의 몫이다. 그러므로 대상에 따라 보호의 정도가 ‘적절’해야 한다는 것은 소비자보호의 기본 원칙이다.
요컨대 정부가 추진 중인 금소원 분리안은 개편의 핵심을 벗어난 것은 물론이요, 국민경제적 부담의 측면에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외양 위주의 땜질 처방으로는 우리나라 금융의 발전과 안정은 백년하청이다. 정부는 감독 개편의 핵심과제를 직시하고, 관치를 다스려 감독지배구조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통합모형도 비로소 양질의 감독서비스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 다수의 모범적 통합감독국처럼 말이다.
박 대통령은 “금융소비자 입장이 충분히 반영됐는지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금감원에서 금소원을 분리해 독립기구화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금융위와 금감원도 금소원 분리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감원을 건전성감독기구와 소비자보호기구(영업행위 감독 포함)로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2011년 이후 저축은행의 대규모 영업정지로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국회와 학계 등에서 본격화됐다.
분리론자들은 금감원 내에 금소처를 존치시키는 것으로는 독립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없고, 금감원이 건전성 감독에 치중하게 돼 소비자보호가 뒷전으로 밀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보호가 상충하는 만큼 금감원에서 소비자보호와 영업행위 감독업무를 떼어내 ‘쌍봉형(twin peaks)’ 체계로 금감원을 개편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한 반대론자들은 검사 부담 증가, 양 기관 사이의 갈등 소지 등을 들어 금소처를 금감원 내에 두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주장을 편다. 호주 네덜란드 영국 등 3개국에서 쌍봉형 감독체계를 도입하긴 했지만 이는 각국의 금융환경, 정치적 상황, 역사적 배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소비자보호를 강화하기 위해 감독기구를 분리해야 한다’는 취지로 쌍봉형을 도입한 사례는 없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번 주 맞짱토론에서는 금소원 분리에 대한 찬반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
찬성 - 금융감독 독점 구조에선 소비자보호 기능 약해져
통상 우리는 어떤 일이 잘못될 때 결국 ‘사람이 문제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이 말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심성을 원하는 방향대로 고치기 쉽겠는가? 사람의 심성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제도 변화를 통해 사람들의 유인과 행태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일지도 모른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이 경험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도 변화를 통해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현행 제도가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면 그 제도 역시 인류가 만든 것이니만큼 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 역시 이런 맥락에서 논의해볼 수 있겠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금융감독체계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제도는 각각의 장단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금융소비자 보호가 금융산업에서 주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것은 국민경제에서 금융거래의 중요성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국민들은 노후 대비를 위한 방법의 하나로 연금 등 다양한 금융자산을 보유하기 시작했으며, 주택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해 왔다. 1998년 30% 미만이던 은행의 가계대출 비중은 현재 40%를 훨씬 웃돌고 있으며, 기관투자가 중심인 펀드시장도 개인투자자 중심으로 변화했다.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 최근 1년 뚜렷한 성과 없어
문제는 금융소비자 피해가 그 이상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금융시장의 행태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 저축의 대부분이 예금으로 이뤄졌던 환경에서, 예금으로 인한 손실은 은행이 건전하고 튼튼하다면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나 금융회사의 위험관리 기법 발전은 다른 양상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자신이 부담을 짊어지는 예금 대신 금융소비자에게 위험을 전가시키는 펀드와 변액보험과 같은 금융상품 판매를 확대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유익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그것이 금융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이해 상충 문제가 빈번히 나타나게 됐다.
그러나 현행 금융감독체계는 이런 금융소비자 피해를 완화시키는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금융감독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현행 금융감독체계에서는 금융감독 기능이 금융산업정책이나 거시정책에 의해 희생돼 왔다. 우리가 경험했던 신용카드 사태나 저축은행 문제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이들 금융산업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경우 금융감독 기능이 건전성 감독에 치중돼 있어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한 후순위채 발행을 허용했지만, 기관투자가도 매수하지 않는 후순위채를 금융회사가 개인들에게 파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요컨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 간 이해 상충, 건전성 감독 기능과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의 이해 상충이 바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미약하게 만든 원인인 것이다. 제도적으로 이것은 금융감독체계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지 않는 독점적인 체계인 것에서 비롯된다. 금융산업정책과 감독정책을 독점하고 있는 금융위원회는 단기적인 정책 목적으로 인해 감독정책을 희생시켜 왔다. 금융감독 집행 기능을 통합적으로 담당하고 있는 금감원은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목적에 치우쳐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소홀히 해왔다. 그러므로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의 분리, 그리고 건전성 감독기능으로부터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의 분리를 담보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금융소비자보호원의 설립은 한편에선 금융위로부터의 독립이어야 하며, 다른 한편에선 금감원과 대등한 관계를 갖는 금융감독기구로의 분리여야 하는 것이다.
물론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독립과 분리 설립에 대한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감독기구 분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굳이 분리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다는 반론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금감원에 소속된 금융소비자보호처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금감원 내부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입증하고 있다. 필자는 금융소비자 보호는 어떤 이유로도 방치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당국, 금융사 건전성만 초점 공급자 중심 구조 바꿔야
금융감독기구의 분리가 금융비용을 증가시켜 금융 발전을 저해시키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 금융회사 이익의 상당수가 정부에 의한 과도한 보호에 힘입은 바 컸다고 판단한다. 이런 보호환경이 금융업이 제조업에 비해 현격히 낙후된 요인의 하나였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로 인해 금융회사의 비용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과거 불균형한 이익을 금융소비자에게 돌려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금융감독체계 재론 지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단순히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분리만을 강조하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중요한 과제인 금융정책과 감독정책의 분리가 소홀히 될 가능성이다. 이런 우려가 일부에서 금융소비자보호원의 분리를 반대하는 근거가 되고 있음을 박 대통령은 인식하기를 바란다.
금융소비자보호원 설립이 관치금융 및 공급자 중심의 금융구조를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도록 추진돼야 함을 재삼 강조한다.
반대 - 관치 심해지고 비용만 증가…감독체계 개편 핵심 아니다
정부의 감독체계 개편작업이 금융소비자보호원 분리로 최종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개편의 핵심을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과거로 눈을 돌려보자. 1998년의 감독체계 개혁은 실로 획기적이었다. 당시 외환위기를 불러온 관치금융을 일거에 청산해야 한다는 온 국민의 염원이 개혁에 상당 부분 반영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떠한가. 전·현직 금융관료의 인적 네트워크(모피아)가 정책은 물론 기관 경영과 시장 작동까지 좌우하는 가운데 관치금융이 도처에 번성한 상태다.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 금융감독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우리나라 감독시스템은 일찍이 2000년대 초부터 궤도를 벗어났다. 이는 금융감독의 머리(정책수립)인 금융위원회(정부 조직)와 몸통(집행)인 금융감독원(비정부 공법인조직)이 분리된 기형적 감독구조 탓이다. 감독정책과 집행은 유기적 일관성이 생명인데, 두 업무를 서로 다른 기관에 갈라놓은 것부터가 무리수였다. 예나 지금이나 머리와 몸통은 조직문화가 서로 달라 걸핏하면 다투기 일쑤고, 유사시 책임소재를 따지기도 어렵다. 이런 이원 감독구조의 틈새를 관치세력이 비집고 들어와 감독지배구조(감독독립성·책임성)를 각종 왜곡으로 오염시켰다. 그 결과 감독이 경기정책(내수부양)에 종속되면서 2003년 신용카드사태가 빚어졌다.
감독업무 단절 고려 안한 외양 위주의 ‘땜질 처방’
감독이 관치에 일단 길들여지면 정치적 영향에 민감해지고 금융(산업)정책에도 종속된다. 2011년 불거진 저축은행 사태도 그런 일례다. 요컨대 관치에서 비롯된 감독의 정책적·정치적 종속성으로 지난 세월 우리나라 금융기관과 금융소비자는 다같이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관치를 다스리고 감독지배구조를 바로 세우는 것이 감독 개편의 핵심과제다. 구체적으로 머리와 몸통을 합쳐 하나의 감독당국(비정부 공법인조직)으로 단일화하고, 금융정책권을 떼어내 기획재정부로 이관함으로써 감독당국은 감독에만 전념해야 한다.
문제는 관치가 시스템 내부에 단단히 터를 잡은 오늘의 현실에서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기재부·금융위·금감원 등 관련 당국 간 기존 권한의 재배분은 물론 기관통폐합까지 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보호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인 만큼 정부와 국회에 다같이 매력적인 소재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는 크게 뒤처져 있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금소원을 분리하자는 생각이 그래서 제기된다. 금소원 분리론에는 이론적 기반도 있다. 건전성감독과 시장행위감독(소비자보호감독)을 분리해 두 감독당국에 하나씩 맡기자는 쌍봉모형론이 그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위는 금감원(건전성감독)과 금소원(시장행위감독)을 둘 다 거느리게 된다. 금융관료들도 내심 바라던 바다. 그러니 정부와 국회 입장에서 금소원 분리만큼 생색내기도 좋고 추진하기도 쉬운 데다 이론 배경까지 갖춘 개편 메뉴가 또 어디 있으랴. 하지만 이게 바로 우리 사회가 빠지기 쉬운 ‘감독모형 선택의 함정’이다.
냉철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나라 감독 개편의 핵심과제인 관치 청산과 감독종속성 탈피는 특정 감독모형의 선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소비자보호만 놓고 보더라도 그 후진성은 금소원이 분리되지 않아서라기보다 감독이 관치와 정치에 휘둘려 온 데에 주된 원인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소원 분리(쌍봉모형 채택)로 소비자보호가 개선되길 바랄 수 있겠는가. 올바른 개편 없이는 어떤 모형이든 관치와 감독종속성에 오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금소원 분리는 다음 세 가지 이유로 국민경제에 겹겹이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소비자보호는 공짜점심’이란 사회적 환상 심어줄 수도
첫째, 금소원 분리로 쌍봉모형이 도입되면 현행 통합모형에 비해 더 많은 유지비용이 들 것이다. 건전성감독과 시장행위 감독은 충돌하기보다 상승작용한다. 상충을 중시해 금소원을 금감원에서 분리해낸다고 상충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며, 분리된 두 감독업무가 서로 단절되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 없다. 이는 분리된 두 기관 사이에 감독의 상호조정과 소통이 늘 필요함을 의미한다.
결국 금소원 분리는 상시적 조정비용의 상승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관 간 조정에 특히 미숙하다. 또한 감독기관 수가 늘면 고정비용과 감독인력이 자연스레 증가한다. 이 모두가 쌍봉모형의 유지비용을 높이는 요인들이다.
둘째, 금소원 분리 위주의 개편이라면 관치 및 감독종속성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규모와 권한이 분화된 두 감독기구(금감원·금소원)에 대한 관치 및 정치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국민경제적 폐해가 증폭되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셋째, 분리된 금소원으로 소비자보호에 대한 그릇된 사회적 환상과 기대가 집중되는 경우 소비자보호가 지속 가능한 수준을 훌쩍 넘어 오버슈팅할 우려가 있다. 이는 소비자보호를 서민과 중소기업 등 취약계층을 위한 금융복지 정책쯤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 일각의 분위기와 관련된 우려다. 소비자보호는 공짜 점심이 아니며 그 부담은 결국 온 국민의 몫이다. 그러므로 대상에 따라 보호의 정도가 ‘적절’해야 한다는 것은 소비자보호의 기본 원칙이다.
요컨대 정부가 추진 중인 금소원 분리안은 개편의 핵심을 벗어난 것은 물론이요, 국민경제적 부담의 측면에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이와 같은 외양 위주의 땜질 처방으로는 우리나라 금융의 발전과 안정은 백년하청이다. 정부는 감독 개편의 핵심과제를 직시하고, 관치를 다스려 감독지배구조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통합모형도 비로소 양질의 감독서비스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 다수의 모범적 통합감독국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