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면서 청취자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건
어디에서도 할 수 없잖아요. 라디오는 온정이 남아 있는 유일한 매체 같아요.
캠프가던 버스에서 사회를 보던 여고생, 따뜻한 음악전하는 두시의데이트 DJ로
“사실 제안을 급하게 받았어요. ‘두시의 데이트’가 계속 대타 체제로 돌아가다 정식 DJ를 빨리 발탁해야 하는 상황이라 하루 이틀 안에 결정해야 했거든요.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만 이런 관록 있는 프로그램을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얼른 기회를 잡았죠.”
이제 ‘두시의 데이트’ 안방마님 3주차.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경림은 “데뷔 때처럼 긴장되고 설렌다”며 얼굴 가득 홍조를 띠었다. 아직 부족하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고교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라디오 인생은 꽤 화려하다.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심심타파’와 KBS ‘FM 인기가요’ 등 밤시간대 라디오 프로그램 DJ를 두루 섭렵하고 드디어 ‘두시의 데이트’에 입성하게 된 것.
“요즘처럼 짧고 단선적인 소통이 늘어난 시대에 라디오는 긴 호흡으로 사람 사는 냄새를 전할 수 있는 온정이 남아있는 유일한 매체 같아요. 누군가와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면서 청취자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 건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거니까요.”
이렇듯 애정이 많아서인지 배우 정우성과 MBC 드라마 ‘구가의 서’의 신예 스타 최진혁, ‘코리안 특급’ 박찬호까지 게스트로 섭외하는 데 직접 발벗고 나서 방송 초반부터 화제가 됐다. 여기에는 물론 데뷔 시절부터 항상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 온 박경림만의 ‘황금인맥’도 한몫했다.
“라디오를 통해 인생을 많이 배웠어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저를 친딸처럼 챙겨주신 이문세 아저씨나 김장훈 박수홍 오빠 같은 분들을 만나게 해 준 고마운 매체죠. 이제 소중한 인연을 저도 다른 분들한테 조금씩 돌려드리며 살아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물론 쉽지만은 않은 도전일 것이란 생각은 든다. “김기덕이라는 전설적인 DJ를 시작으로 주병진 이문세 윤도현 박명수 같은 대표 DJ들을 배출했는데 갑자기 여자가 온다고 했을 때 반대 의견도 분명히 있었을 거예요. 한 달을 하든 1년을 하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같은 시간대에 수년째 전체 라디오 청취율 1위를 기록 중인 SBS ‘두시 탈출 컬투쇼’가 버티고 있어 부담스럽진 않을까.
“‘컬투쇼’ 두 분의 호흡이나 웃음 코드는 제가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컬투’가 다 아우르지 못한 ‘틈새시장’을 공략해보려고요(웃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주부로서 갖게 된 안목이나 여성적인 소통과 공감대 같은 것들을 많이 나누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방송은 돌고 도니까 언젠가는 ‘두시의 데이트’가 1위를 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새롭게 라디오 진행을 맡으면서 꿈이 있다면 여성 DJ로서 단일 프로그램을 가장 오래하는 진행자로 남는 것이라고 했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예전에는 항상 ‘오프라 윈프리 같은 토크쇼 진행자’라고 대답했어요. 어느 순간 제가 너무 부족하면서 말로만 떠들었구나란 생각에 많이 부끄러웠죠. 요즘에는 그저 제 자리를 꾸준히 지키면서 오래도록 친구처럼 함께 가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요.”
장서윤 텐아시아 기자 ciel@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