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몰아주기 첫 과세] 수직계열화 등 정상거래에도 세금 부과…기업 불만 '폭증'
지나친 내부거래 규제…계산방식도 복잡
문제는 정확히 반반씩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 여천NCC의 세금을 누가 내야 하느냐다. 관련 세법은 ‘2명(2개 법인)이 50%씩 지분을 보유한 경우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과세대상이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천NCC는 한화와 대림 측에서 대표이사도 공동으로 두고 있다. 한화와 대림 두 그룹이 똑같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다. 대림그룹 세무담당자는 “지난달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는데 처음엔 김 회장과 이 회장 모두 과세 대상이라고 했다가 이달 초 간접보유지분이 더 많은 이 회장만 과세 대상이라고 통보해왔다”며 “우리도 뭐가 맞는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일감몰아주기 관련 상속·증여세 신고납부가 이달 1일 시작된 가운데 기업들의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복잡한 관련 법 조항 탓에 과세 대상이 누구인지, 얼마의 세금을 내야 하는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정상적인 거래까지도 일감몰아주기로 규정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헷갈리는 일감 과세법
기업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점은 ‘누가 과세 대상이냐’는 것이다. 관련 세법은 수혜법인(일감을 받은 기업)의 ‘지배주주’를 과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지배주주의 개념이다. 수혜법인의 지분 3% 이상을 보유한 대기업 오너 일가라는 게 세법상 정의인데, ‘지분 3%’를 계산할 때는 직접보유지분과 간접보유지분을 따져야 한다.
예컨대 대기업 총수 김××씨가 A기업(수혜법인)의 지분 3%를 갖고 있다면 계산은 간단하다. 그런데 김씨가 다른 계열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A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셈법은 복잡해진다. 김씨가 B사 지분을 50% 갖고 있고, B사는 C사의 지분 30%, C사는 A사 지분 20%를 보유한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김씨가 A사 지분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지만 관련 세법에 따라 A사에 대한 김씨의 간접보유지분은 3%(0.5×0.3×0.2×100)가 된다. 기업 입장에선 대주주가 보유한 모든 계열사 및 관계사 지분관계를 따져야 한다. 삼일회계법인 관계자는 “실제 기업들의 지분구조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며 “이 때문에 하루에도 과세 대상이 누구인지를 묻는 기업 세무담당자들의 전화가 수십통 걸려온다”고 전했다.
여천NCC의 사례처럼 두 기업이 5 대 5 비율로 합작사를 세운 경우도 기업들이 헷갈려 하는 대목이다. 이준용 회장과 김승연 회장이 계열사를 통해 지분을 나눠갖고 있는데도 간접보유지분이 누가 더 많으냐에 따라 과세 대상이 결정되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이 회장은 합작사인 여천NCC에 일감을 몰아줘 세금을 내야 하는데, 똑같은 입장인 김 회장은 세금을 내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정상적인 거래도 무차별 과세
일감 과세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기업 내부거래를 규제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중소기업인 미원EOD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계면활성제를 만드는 곳으로 미원상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계면활성제, 산화방지제, 타이어첨가제, 고무첨가제 등을 만드는 미원상사는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3년 전 계면활성제 원료를 생산하는 미원EOD를 자회사로 분리했다.
미원EOD를 통해 계면활성제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일종의 수직계열화를 시도한 것이다. 100% 출자사란 점에서 회사만 나눴을 뿐이지 미원상사와 미원EOD는 사실상 같은 회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거래관계도 관련 세법상 일감몰아주기로 판단돼 미원상사 대주주는 세금을 내야 한다. 미원EOD 관계자는 “미원상사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원EOD가 내부거래로 올리는 모든 수익은 미원상사에 귀속되지 대주주가 이득을 얻는 게 아니다”며 “현행법 조항은 세금을 안 내려면 다시 합병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경제계는 관련 세법이 기업 대주주가 내부거래로 실제 이익을 얻지 않았는데도 증여를 받은 것처럼 규정하는 법 조항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학계와 회계법인 업계에선 관련 세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로 이익을 얻는 건 해당 기업이지 대주주가 아니다”며 “일감몰아주기로 해당 기업의 주가가 올라 대주주가 배당이득을 얻으면 소득세를 매기는데 증여세를 또다시 부과하는 건 이중과세”라고 지적했다.
이태명/정인설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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