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처럼 한 회사가 내부 역량으로 신약후보 물질을 찾고 신약까지 개발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과감하게 외부에서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기술혁신)이 국내 제약사가 살 길입니다.”

LG생명과학(사장 정일재)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제약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고 공격적인 변신에 나섰다. 신약개발에 국내 산·학·연 기관들의 자원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 전담팀까지 꾸려 운영하고 있다.

[건강한 인생] 김명진 LG생명과학 기술원장 "신약 후보물질 개발자들에 문 활짝 열려있어"
김명진 LG생명과학 기술원장(사진)은 “회사 내부 역량을 총동원해도 1년에 신약 유효물질 2개를 찾아내기가 어려워지는 환경”이라며 “이는 국내사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다국적사들도 겪는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신약 후보물질 찾기가 날로 어려워지면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체 역량으로 신약을 개발하기가 까다로워진 것이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오픈 이노베이션은 제약사와 기초 기술을 갖고 있는 대학이나 출연연구기관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협업’이자 ‘상생’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11년까지 4년간 진행됐던 일본 제약사 다케다와의 국제프로젝트 사례를 소개했다. LG생명과학은 다케다의 제안으로 비만치료제 공동 연구에 착수해 새로운 후보물질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다.

김 원장은 “우리 회사를 방문했던 다케다 측이 자신들이 하고 있는 비만치료제 관련 연구가 있는 것을 안 뒤 공동 프로젝트를 제안했다”며 “다케다는 자체 연구 프로젝트와 별도로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어 좋고, LG생명과학은 비만치료제 관련 연구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성과에 따른 자금을 받는 윈윈 사례였다”고 말했다. 두 회사가 찾아낸 비만치료제 신물질은 약효는 뛰어나지만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 상용화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LG생명과학은 국내 최초의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 개발 당시 국내 한 민간연구기관에 관련 기술을 이전해줘가면서 임상분석을 맡기기도 했다. 김 원장은 “자체적으로 하기에는 고정비 부담이 커 해외 기관 이용을 고민하다가 이번 기회에 국내 기관에 관련 기술을 이전해주면 윈윈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며 “우리는 비용을 아끼고 해당 업체는 관련 기술을 축적하는 결과로 이어져 만족스럽다”고 했다.

김 원장은 유효물질이나 신물질 후보군을 연구하는 곳이라면 기관과 개인 연구자를 떠나 적극 만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다. 그는 “과거에는 연구자들이 LG생명과학을 찾아와 ‘이런 게 있는 데 연구 한번 해보겠습니까’라고 제안했지만 이제는 우리가 찾아다니며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또는 괜찮은 아이템을 외부 연구자들에게 줘가면서 ‘해볼 용의가 있느냐’고 권유하는 능동형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생명과학은 회사가 집중하고 있는 항암과 당뇨 등 대사질환 분야에 대한 오픈 이노베이션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국내 제약사들 간에도 외부의 신물질 후보군 확보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주요 제약사들이 한국형 신약 개발을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과 연구개발 생산성 저하, 다국적 제약사의 공세 등에 맞설 핵심 카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제약사들이 초기부터 외부 벤처회사의 지분을 사들여 자회사를 만들거나 주요 주주로 참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원장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신물질 확보에서부터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까지 받은 ‘팩티브’와 최근 개발한 19호 신약 ‘제미글로’에 이르기까지 신약 연구에 대한 열정과 경험에서 LG생명과학이 가장 확실한 우위를 갖고 있다”며 “이런 강점이 외부와의 오픈 이노베이션에도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