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 대위가 지난 20일 경남 창원시 해군진해기지사령부에서 참수리 278호정을 타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 대위는 “정장(艇長)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대원들 간의 신뢰”라고 말했다. 해군 제공
오은선 대위가 지난 20일 경남 창원시 해군진해기지사령부에서 참수리 278호정을 타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 대위는 “정장(艇長)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대원들 간의 신뢰”라고 말했다.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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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5분 전! 모두 위치로!”

지난 20일 오후 3시 경남 창원시 해군진해기지사령부.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고속정에 있던 군인 27명이 재빨리 움직였다. 사수는 20㎜ 기관포 앞에 자리 잡았고, 갑판장은 출항을 알리는 깃발을 올렸다. 이들을 지휘하는 사람은 고속정 함교 위의 오은선 대위(32)였다. 까맣게 탄 얼굴의 그는 대원들의 움직임을 익숙하게 훑었다. 구명조끼 뒤엔 ‘1’이란 숫자가 선명했다. 이 고속정의 ‘넘버원’, 정장(艇長)이란 표시다.

◆바다 누비는 여성 지휘관

오 대위는 해군 제711고속정편대의 참수리 278호정을 이끄는 여군 정장이다. 부하 모두가 남성이다. 참수리급 고속정은 해군 전투함 중 가장 작지만 빠른 기동력으로 함대의 선두에서 교전하며 대간접작전 등 주요 임무에 투입된다. 대함레이더와 40㎜ 함포 1문, 20㎜ 함포 2문, K-6 기관총, 대잠폭뢰로 무장하고 있다. 해군에선 고속정장이 ‘지휘관의 꽃’이라 불릴 만큼 힘들지만 보람 있는 자리로 통한다.

“바다에 나가 보면 비상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조타기(키를 움직여 선박의 진로를 유지, 변경하는 장치)가 고장 나 순전히 제 감에만 의존해서 항해했던 적도 있어요. 그럴 때 정장과 대원들이 얼마나 서로를 믿느냐가 가장 중요하죠.”

여군에게 고속정 정장 문호가 열린 건 지난해 8월부터다. 그 전엔 고속정 공간이 좁고 업무가 고되 여성 장교나 부사관의 고속정 승선을 제한했다. 해군사관학교 59기 출신인 오 대위가 고속정 정장이 된 지 5개월. 그러나 그는 정장이 되기 전 해상경험만 4년을 쌓았다. 그는 “군인이라면 여자라고 해서 남자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원들과 매일 12시간 이상 배 위에서 파도를 맞으며 서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모두가 가족이 됩니다.”

◆작전 후 ‘커피타임’이 비결

오 대위가 처음부터 해군 지휘관 자질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도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그는 “해사 시절 물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두려웠다”며 “죽어라 훈련해서 인명구조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자유롭게 생활하는 대학생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도 많았다. “내가 정말 이 길을 가야 하나 하는 질풍노도의 시절도 겪었다”고 회상했다.

고속정 정장으로 부임한 뒤 남자뿐인 대원들과 신뢰를 쌓는 일도 쉽지 않았다. “대원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축구를 같이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저를 봐주는 거예요. 운동으로 살을 부대끼며 친해지는 건 남성 지휘관보다 어렵겠구나 싶었죠.” 대신 그가 택한 방법은 작전 후 ‘커피타임’이었다. 갑판 위에서 커피를 한 잔씩 타 마시면서 대원들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 대위는 “젊은 사병들의 연애상담을 맡아 하면서 대원들과 마음을 터놓게 됐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외국 해군과 교류하는 일을 맡는 것. “유엔평화유지군에서 연합작전을 펼치고 싶습니다. 그 전에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의 믿음직한 리더가 돼야 겠죠.”

창원=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