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곳서 제대로 해보자…쌍둥이 형제 '의기투합'
체력 자신 있었지만 훈련서 인간한계 체험
美선 군복에 존경심…한국도 軍 존중했으면
지난 19일 청룡부대에서 기자와 만난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시민권을 신청하라는 미국 법원의 우편물을 부모님이 갖다버리곤 했다”며 “아버지(박재근 한양대 교수)로부터 늘 ‘너희는 한국인’이라는 교육을 받았고 군대도 당연히 가야 한다고 여겨왔다”고 말했다. 장성 출신인 외할아버지(김기성 예비역 육군 소장)의 영향도 컸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팰러앨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형제는 각자 대학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떨어져 살게 됐다. 형 장호씨가 텍사스 오스틴주립대(생물·화학 전공)에, 동생 성호씨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기업법학 전공)에 입학하게 된 것.
이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형제는 1학년 한 학기를 마치고 지난해 5월 다시 뭉쳤다. 하늘과 물 속을 가리지 않고 적을 찾아 섬멸하는 해병대 수색대에서였다.
“군대에 함께 가기로 한 뒤 어디에 입대할지 알아봤습니다. 한 번 가는 건데 제대로 하고 싶어 제일 힘든 곳으로 골랐습니다. 인터넷에서 해병대 수색대를 접하고 여기다 싶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1월 귀국한 뒤 수색대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다. 수영을 배우고 구조 다이버 자격증을 땄다. 중학생 때 밴쿠버 육상대회에서 각각 원반·투포환·창던지기와 100·200·400m 달리기에서 1위에 오를 정도로 운동신경과 체력이 뛰어났던 이들도 “11주간의 특수수색교육은 지옥과도 같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127명이 들어와 66명만 수료했습니다. 4박5일간 잠을 안 자고 제한된 식사만 하는 ‘극기 주’ 훈련을 받으면서 인간의 한계를 체험했습니다. 그 훈련을 견디면서 몸이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는 걸 실감했어요. 인내심이 정말 많이 늘었습니다.”(박장호 상병)
“무엇이든지 부딪치면 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젠 정말 죽을 만큼 힘들지 않으면 힘들다고 말하지 않게 됐어요. 미국에선 힘에 부치면 안 해도 됐는데, 앞으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박성호 상병)
형제는 1.8㎞ 전투수영에서 100명 중 형이 3위, 동생이 4위를 차지하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특수수색교육을 수료하고 정예 수색대원으로 인정받았다.
외국에서 자라 한국인 친구가 많지 않던 이들에게 군과 사회는 끈끈한 전우애를 보여줬다. 길에서 만난 해병대 출신 할아버지는 휴가 나온 이들의 ‘빨간 명찰’만 보고 용돈을 줬고, 떡볶이 가게 아주머니는 자신의 아들도 군대에 갔다며 ‘무한 리필’을 해주기도 했다. 택시기사는 택시비를 받지 않고 태워줬다.
이들은 얼마 전 가수 백지영 씨와 결혼한 해병대 수색대 출신 배우 정석원 씨가 ‘치킨 100마리’를 사들고 찾아온 일화를 소개하고 “전역 후 우리도 치킨을 사들고 수색교육대를 찾아가기로 했다”며 웃었다. 미국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정 아니냐고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에선 군복을 입고 있으면 더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유니폼’에 대한 존경입니다. 한국엔 군인들을 오히려 업신여기는 경향도 있는 듯합니다.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군대 아닙니까. 군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합니다.”
이들은 “전역 후 미국으로 돌아가 학업을 마치면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각각 전공을 살려 형은 제약회사나 환경단체 혹은 대체에너지 관련 일을, 동생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를 하고 싶다는 계획이다.
“일부 청년들은 군 생활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군대에서 배운 책임감과 인내심, 희생정신으로 사회에 나와 뭐든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포=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