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경소셜매거진S에 짧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갑과 을이 만날 때/ 을은 항상 웃는다/ 갑은 거의 찡그리고 있다/ 직업 인상이 평소 인상이다/ 을을 만나면 하루가 즐겁고/ 갑을 만나면 며칠 재수없다”

칼럼 제목은 ‘을이 결국 성공하는 이유’다. 갑을 관계는 이렇게 묘하다.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그 자리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을이라고 항상 약한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일찍 회사를 나가 사업을 한 사람이 거의 정년을 앞두고 퇴직한 사람에 비해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을’의 경험이 그만큼 무서운 거다.

갈등 부르는 정치논리 허망

‘갑을(甲乙) 관계’가 정치 이슈화되는 현실을 보면 우리 정치인들이 아젠다나 이슈를 만들어내는 데 별 재주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벌어진 현실에 감성적으로 접근해 영합적인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갑과 을은 대표적 이분법이다. 그리고 대개 이분법은 선거를 포함한 정치용일 경우가 많다. ‘을의 눈물을 닦아주겠다’ 식으로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감성적 호응 이상의 것을 얻기 어렵다.

갑을 관계는 둘 아니면 잘 모르는 묘한 사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입장에서 내게 갑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내 물건을 통째로 사주는 또는 내게 서비스를 맡기는 파트너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OO자동차 협력업체’라고 간판에 적는 것 자체가 자부심이다.

갑과 을은 그리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이라고 해도 항상 갑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공공기관에 TV를 납품할 때는 이 회사도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1차 협력업체는 삼성엔 을이지만, 다시 재하청을 줄 때는 갑이 되는 것이다. 갑과 을이 정해져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규제하고 누구를 보호해줘야 하는가.

명백한 기준에 의해 공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경우를 명시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기업 사회를 갑과 을의 이분법으로만 보고 모든 거래와 계약을 갈등으로만 보는 시각을 키우는 부작용만 낳는다.

상호의존성을 공동 가치로

지난 정부부터 보면 이 논의는 ‘대·중소기업 상생’으로 출발해 ‘동반성장’으로 발전해오다 새 정부 들어 갑자기 갑을 관계로 추락한 느낌이다. 오히려 그 논의의 연장선상이었다면 ‘글로벌 동반 진출’ 정도로 한 단계 치고 나갔어야 할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리뷰출판부에서 최근 나온 ‘깨어 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에서 저자인 존 매케이 홀푸드 사장은 기업문화가 우수한 기업은 파트너들에 △함께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기회를 같이 찾고 △특히 어려움을 겪을 때 반드시 공동성장의 목표로 협력한다는 것이 공통 특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얘기하면 갑은 언제든 을과의 관계를 끊어버릴 자유가 있다. 또 을보다 더 불쌍한 병(丙) 정(丁)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분명히 잘못을 저지른 갑들을 변명할 생각은 하나도 없다. 다만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불공정거래에 관해선 엄중하게 처벌하되 대·중소기업이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정책 방향을 잡아야 옳다. 파트너 기업들이 ‘상호의존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를 세심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얘기다.

권영설 편집국 미래전략실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