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中 변화 핵심은 量에서 質…'카나브'로 공략"
“낙타와 당나귀가 다니던 길을 시속 300㎞대 고속철이 달려요. 이렇게 변한 중국시장을 예전처럼 양으로 승부해 공략할 수 있겠어요?”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81·사진)은 지난 4월부터 5월 초까지 33일 동안 중국 실크로드와 양쯔강, 싼샤, 차마고도 등 곳곳을 둘러봤다. 잠깐잠깐 출장을 간 적은 있지만 중국에서 장기간 체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사막까지 뻗어나간 고속도로의 화물차와 중국을 관통하며 가로지르는 고속철도를 보면서 변화하는 중국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김 회장은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무엇을 하나 하더라도 현지답사를 하는 편이라 실제 중국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기 위해 현지 이곳저곳을 둘러봤다”며 “결론은 이제 중국이 양 위주에서 질로 승부해야 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中 변화 핵심은 量에서 質…'카나브'로 공략"
그가 내세운 중국 승부수는 신약과 유아용품 시장이다. 지난 13일 보령메디앙스 중국 톈진법인과 보령제약 톈진연락사무소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령제약그룹이 중국 현지에 법인을 설립한 것은 1993년 중국 업체를 통해 ‘겔포스’(현지명 포스겔) 판매를 시작한 지 20년 만이다.

김 회장이 직접 중국 곳곳을 둘러보기로 한 것은 고혈압 신약 ‘카나브’의 중국 수출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그는 “다국적회사를 포함한 5~6개사와 판매계약을 협상 중인데 이달 말까지는 결정될 것”이라며 “계약이 성사된 뒤 허가까지 나오면 카나브가 진정 꽃 피우는 곳은 중국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18년여간의 연구 끝에 2011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카나브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카나브는 혈압을 올리는 효소를 차단하는 약물로, 고혈압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안지오텐신수용체차단제(ARB) 계열 신약으로는 가장 최신형이다.

이 분야 국내시장 규모는 6500억원대로 매년 10% 성장하고 있다. 카나브는 지금까지 나온 19종의 신약 가운데 처음으로 연매출 500억원을 내다볼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형 신약성공 모델’로 주목받는 이유다.

김 회장은 “옛날에는 외국약 판매권을 따내려고 괄시받아가며 굽실거려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며 “멕시코 등 수출국가로부터 로열티도 받고, 이들을 우리 공장에서 교육시켜 다시 돌려보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다소 시들해졌지만 중국에서 포스겔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상황은 그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중국에선 전문의약품으로 판매되는 포스겔이 지난해 현지 매출 35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서다.

김 회장은 “현재 생산량이 중국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한국공장을 증설할 계획”이라며 “그런데 중국 정부가 5년 단위로 의약품 허가 시 현지 공장 유무를 따지는 것 같아 중국에도 공장을 지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보령제약은 포스겔의 중국 매출이 향후 연간 3억달러 규모까지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 회장은 국내 제약산업 현실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혁신형 제약사 운영과 관련, “정부가 나름 지원하고 있지만 이왕 육성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톈진=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