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관계가 화두다. 사회적 관심이 뜨겁자 정치권마저 나서 ‘남양유업법’ 등 갑을 관계법을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어떤 관계든 결국은 당사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그 관계는 협상을 통해 형성된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최철규 휴먼솔루션그룹 대표는 “갑을 협상이 어려운 이유는 양측이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이익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협상 전문가인 두 사람은 “상대방을 인간적으로 더 많이 알수록 협상의 파이는 커진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10일 미국 필라델피아의 다이아몬드 교수 자택에서 두 시간 가까이 대담을 가졌다.
"눈앞의 이익 좇기보다 상대를 더 이해할 때 협상의 파이 커져"
▷최 대표=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갑의 횡포’와 이에 대한 ‘을의 반란’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협상학적 관점에서 의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이아몬드 교수=1980년대 제너럴모터스(GM) 얘기부터 해야겠다. 회사가 공룡처럼 커지면서 GM은 협력업체들을 납품가로 옥죄기 시작했다. 결국 많은 협력업체들이 문을 닫거나 GM을 원망하며 떠났다. 2000년대 초 GM이 재정 위기에 빠졌을 때 GM에는 자기 편이 아무도 없었고, GM은 경쟁력을 상실했다. GM이 파산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갑이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면 을은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는다. 언제 빼앗길지 두렵기 때문이다. 혁신적 아이디어는 보통 작은 회사에서 나온다. 이를 통해 파트너인 대기업도 경쟁력을 키우게 된다. 한국의 갑이 과거의 GM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기 파괴적 행동이다.

▷최 대표=협상 강의를 하다보면 ‘을은 어떻게 협상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갑의 ‘요구’가 아닌 ‘욕구’를 파악하라. 협상 결렬 시의 대안(BATNA·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을 준비하라”는 것 등이 기본적인 대답이다. 그 외에 을을 위한 협상법이 있다면?

▷다이아몬드 교수=결국 ‘관계’다. 인간적으로 더 깊은 관계를 맺을수록 협상 결과가 좋아지고, 서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오해하지 말라. 단순히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며 접대를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협상 안건이 늘어나게 되고, 양측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다.

▷최 대표
=동의한다. 1998년 볼보가 삼성중공업의 건설중장비 사업을 인수할 때 양측이 벌였던 협상이 좋은 사례다. 협상 초기 볼보와 삼성은 인수가격만 놓고 줄다리기를 했다. 당연히 협상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가면서 삼성은 볼보에 인수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볼보는 숙련된 한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싶어했다. 또 아시아에서 인지도가 높은 삼성 브랜드를 활용해 지역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했다. 결국 삼성중공업은 ‘삼성’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게 해 줬고, 한국 인력의 승계를 도왔다. 그 대가로 괜찮은 매각가격과 볼보의 자동차 기술 전수라는 큰 이익을 얻어냈다.

▷다이아몬드 교수=북한과의 협상도 마찬가지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데니스 로드먼(올해 초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난 미국 농구 스타)이 진정한 협상가다. 김 위원장과 서로 원하는 것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미국인 아닌가? 북한은 미국에 끝없이 ‘관계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한다. 북한의 첫째 욕구는 체제의 안정, 그 다음이 경제다.

▷최 대표=남북 협상은 까다롭다. 무조건 대화보다는 원칙을 지키는 협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핵을 포기해야 경제 지원을 하겠다’ 또는 ‘민간교류는 정치와 관계 없이 지속하겠다’는 등 정권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원칙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일관성을 가질 수 있고, 남북 간에도 신뢰가 쌓인다. 협상학에서 말하는 ‘히든메이커’(상대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제3자)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남북 협상에서는 중국이 ‘히든메이커’다. 한ㆍ중 협력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다이아몬드 교수=북한은 결국 우크라이나 모델을 따라야 한다. 과거 소련이 붕괴될 때 우크라이나는 서방 세계로부터 경제 원조를 받기 위해 보유하던 핵무기를 모두 모스크바로 보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대가로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다. 북한이 이렇게 되려면 조건 없는 남북대화가 필수적이다. ‘철없는 북한과 대화하는 게 자존심 상한다’고 말하지 말자. 최고의 협상가는 ‘자아가 없는(egoless)’ 사람이다.

▷최 대표=당신의 협상철학은 상당히 동양적이다. 이성보다는 감정을 중시한다. ‘윈윈 모델(미국 하바드대의 로저 피셔, 윌리엄 우리 교수가 개발한 논리적 협상법)’과는 매우 다른 것 같다. 특히 ‘배트나(협상 결렬시의 대안)’에 대한 철학이 다르다. 윈윈 협상에서는 입사 면접을 할 때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제안을 받았다면 이를 꼭 밝히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당신은 반대다.

▷다이아몬드 교수
=구직자가 다른 회사에서 제안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순간, 면접관은 ‘이 사람은 충성심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윈윈 모델은 지나치게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협상을 하다 보면 사람들은 논리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만나는 일 자체가 즐거우면 많이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논리에 집중했을 때보다 감정을 중시할 때 4배 정도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 대표=협상을 ‘서로의 경제적 이익을 나누는 논리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먹고 사는 게 전부였던 시대엔 이런 주장이 통했다. 하지만 지금은 비슷한 경제적 가치를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가 넘쳐난다. ‘공급과잉 시대’다. 이런 시대에 상대를 논리와 경제적 이익으로만 사로잡겠다는 건 어설픈 발상이다.

▷다이아몬드 교수=
나는 동양적 사고를 좋아한다. 7월에 한국에도 갈 예정이다. 29일 열리는 협상마스터 클래스를 위해서다. 워크숍에서는 사람을 대할 때의 철학을 다룰 예정이다. 또 상대가 나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도록, 나도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다.


가식없는 어린아이…가장 좋은 협상가


좋은 협상가는 어떤 사람일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와 최철규 대표는 협상에 대한 일반인들의 고민에 답하는 방식으로 누가 좋은 협상가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1. 협상에서 첫 제안은 내가 먼저 하는 게 낫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양에 따라 다르다. 내가 상대방에 비해 비슷하거나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면 먼저 제안하는 게 낫다. 하지만 정보가 별로 없다면 기다려야 한다.

2. 협상 테이블에는 최대한 많은 안건을 올려 놓는 게 좋다?


맞다. 협상 테이블엔 양측이 논의하고 싶은 모든 것들이 빠짐 없이 올라와 있어야 한다. 유형, 무형, 논리, 감정적인 것, 어느 것이든 테이블에 올라와 있어야 교환이 가능하다. 다만 상대를 충분히 신뢰할 수 없을 때에는 한 번에 하나씩 꺼내놔야 한다.

3. 협상에선 가장 어렵고 중요한 안건부터 다루는 게 좋다?

아니다. 가장 부담 없고 쉬운 안건부터 다뤄야 한다. 상대방이 만나자 마자 다음 미팅은 언제로 잡을지 묻는다면 그는 협상 고수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쉬운 안건이기 때문이다.

4. 좋은 협상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아니다. 협상이란 연기가 아니다. 가장 좋은 협상가는 어린 아이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단순하고 직접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좋은 협상가는 가면을 쓰지 않는다. ‘나 자신’이 된다.

필라델피아=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다이아몬드 교수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이다. 기자로 재직하면서 협상에 관심을 갖게 됐고, 하버드대 로스쿨과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에서 자신만의 협상론을 체계화했다. 졸업 후 와튼스쿨이 그에게 강의를 맡기면서 세계적 협상 전문가가 됐다. 그의 강의는 경매방식으로 이뤄지는 와튼스쿨 수강 신청에서 13년 동안 1위를 차지했다.


○최철규 대표

연세대와 런던정경대(LSE)를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IGM세계경영연구원과 휴먼솔루션그룹에서 국내 1만여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을 상대로 협상 강의를 했다. ‘협상은 감정이다’의 저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