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 축소 우려에 금융시장 요동] "유동성 파티 끝나간다"…신흥국 자금 엑소더스·증시 급락
“파티가 끝나간다는 게 느껴진다.”

홍콩에 있는 자산운용사 도릭캐피털의 하워드 웡 자산관리팀장은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돈이 빠져나가면서 신흥국 자산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6월 들어 신흥국 증시는 일제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핫머니(투기성 단기 자금)’ 유입 차단에 고심하던 각국 정부는 불과 1~2주 만에 외국인 투자 유치책을 강구해야 할 처지가 됐다.

◆자금 유출에 신흥국 증시 급락

지난달까지만 해도 견고한 흐름을 보이던 동남아시아 증시가 6월 들어 급락했다. 인도네시아 증시가 5월 말 대비 9.04% 하락한 것을 비롯해 태국(-7.0%) 필리핀(-6.62) 등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1일 태국과 필리핀의 주가 하락폭은 2011년 이후 가장 컸다.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단오절 연휴로 10일부터 사흘간 상하이증시가 휴장하고 있는 가운데 홍콩증시의 중국기업지수는 11일까지 열흘 연속 하락했다. 1996년 중국 본토기업의 홍콩 상장 허용 이후 최장 기간 하락으로, 지수는 작년 10월 이후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브라질 보베스파지수도 11일 3.01% 하락해 올해 고점 대비 20% 이상 밀렸다. FTSE 이머징마켓 지수가 5월 고점 대비 10% 이상 떨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신흥국 시장에서 빠져나가는 자금 흐름과 일치한다. 글로벌 펀드정보업체 EPFR은 지난주에만 65억달러가 신흥국 펀드에서 유출됐다고 추산했다. 특히 채권펀드에서는 15억2000만달러가 빠져나가 2011년 이후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중국 증시에 투자하는 펀드에서는 2008년 1월 이후 최대인 8억3400만달러가 순유출됐다.

브누아 안느 소시에테제네랄 수석 투자전략가는 “선진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로 만들어졌던 신흥시장의 자산 거품이 Fed의 양적완화 축소 우려로 꺼지고 있다”며 “투자자들의 신흥국 자산 매도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환정책도 정반대로 턴어라운드

5월까지만 해도 자산거품 형성과 통화가치 상승을 차단하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정책도 정반대로 돌아서고 있다. 달러 대비 통화 가치 하락이 외국인의 자산 매도와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 4년간 외화유입 규제책을 내놨던 터키 중앙은행은 11일 해외 자본 유입을 늘릴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지난주 통화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보유 외화를 매각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도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화를 매각하면서 외환보유액이 이달 들어 22억달러 줄었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축소에 대한 시장 충격은 앞으로 3년간 세 차례 더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로버트 파커 크레디트스위스 수석고문은 “이르면 올 4분기에 Fed가 양적완화 규모를 매달 850억달러에서 500억달러로 줄이는 데 이어 내년 2분기에는 양적완화를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며 “2015년부터 2년간 풀린 자금 회수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