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작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노름의 유혹을 못 이겨 늘 빚더미에 올라 살았다. 1866년 10월 그는 출판업자로부터 이른 시일 내에 새로운 소설의 원고를 자신에게 넘기지 않으면 그동안 써온 작품들의 판권을 몰수하겠다고 독촉받았다. 유능한 작가라고는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서둘러 ‘도박꾼’이라는 작품을 구상하고 속기사를 고용했다. 구술하는 것을 받아쓰게 해서 시간을 아끼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앞에 나타난 스무 살의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1846~1918)는 뜻밖에도 대단히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로 총명하기까지 해 40대 후반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슴을 콩콩 뛰게 만들었다.

2년 전 아내와 사별한 그는 소설 쓰기와 ‘작업질’을 병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를 위해 그는 작품 속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나이 든 화가를 등장시켜 그가 안나(Anna)와 이름이 비슷한 젊은 여인 안야(Anya)에게 청혼하는 플롯을 설정한다. 그리고는 안나에게 젊은 여성이 자신과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성격도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묻는데 뜻밖에도 안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순간 도스토예프스키의 눈에서 희망의 빛이 솟아났다.

“자, 당신 자신을 안야에 몰입해보세요. 그리고 나를 나이 든 화가라고 생각하세요. 자, 나는 당신에게 내 아내가 되어 달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 건가요.” 그러자 안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한다. “난 당신을 사랑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대답할 거예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사실상 프러포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총명한 안나가 이 정도도 눈치 채지 못할 바보는 아니었다. 작업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곧 안나에게 정식으로 청혼했고 안나는 이를 행복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안나는 학창시절부터 도스토예프스키 마니아였다. 어찌나 그의 소설을 좋아했던지 친구들 사이에서 소설의 주인공인 ‘네토츠카’로 통할 정도였다. 그런 자신의 우상으로부터 청혼을 받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25년이라는 나이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나마 빚 독촉에서 해방된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듬해 2월15일 안나와 결혼식을 올린 후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허니문을 즐겼다. 장장 4년 반에 걸친 허니문이 막을 내리게 된 것은 빚쟁이들이 법원에 낸 소장 때문이었다. 그런데 개 버릇 남 주지 못하는 것일까. 러시아로 돌아가던 그는 독일 바덴에 머물 때 다시 도박에 손을 대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제네바에 머물며 죽어라고 작품을 써 도박으로 탕진한 돈을 벌충해야 했다.

드레스덴에 머물 때 두 아이가 태어나자 이 참에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무장해제시켰다. 가계를 꾸려야 한다며 그로부터 모든 경제권을 박탈했다. 남편의 원고 청탁에서부터 출판과 판매까지 안나가 도맡았다. 그의 당찬 가계 관리로 도스토예프스키는 금방 빚에서 해방됐고 더 이상 쪼들리지 않게 됐다. 느지막이 부인 덕에 도망자 신세에서 해방된 것이다. 그런 그도 마음이 움직였는지 1871년 마침내 도박에서 깨끗이 손을 뗐다. 경제적 심리적 안정을 바탕으로 그는 1874년 소설 ‘미성년’을 발표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안나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 25세나 어렸지만 인간적 성숙도로 따지면 거꾸로 안나가 남편보다 25세는 더 많았다. 이해심 많고 사려 깊은 안나의 존재를 빼놓고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얘기하긴 어렵다. 결혼 초기 도스토예프스키가 “여자들은 끈기가 부족하다”는 말을 내뱉은 적이 있는데 화가 난 안나는 이때부터 우표 수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남편의 선입견에 말로 상대하기보다는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 것이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뜬 뒤는 물론 자신이 죽는 날까지도 우표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1881년 도스토예프스키는 60세로 숨을 거뒀다. 35세에 과부가 된 안나는 이때부터 재혼도 하지 않고 남편의 유고와 자료를 정리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로 영원히 남기를 바랐다. 그는 모스크바의 국립역사박물관에 남편을 기념하는 전시실을 여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고 1906년 마침내 ‘도스토예프스키의 방’이 문을 열었다. 속기사인 안나 덕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짧은 시간 안에 그 많은 명작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인간 도스토예프스키를 낳은 것은 그의 어머니였지만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든 것은 아내인 안나였다. 문학소녀의 한 문인에 대한 사랑이 러시아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사랑의 힘, 참으로 위대하지 않은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