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실패해도 신불자 꼬리표…연대보증제 없애야 맘놓고 창업"
‘메디슨 대표이사, 벤처기업협회 초대회장, 중소기업 옴부즈만.’

이민화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초빙교수(60·사진)의 이력이다. 그는 1985년 메디슨 창업 후 2002년 사업을 접을 때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벤처기업가들의 롤모델이자 업계 맏형이었다.

그런 이 교수에게 경력과 평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꼬리표’가 하나 붙어 있다. 바로 신용불량자다. 회사가 부도날 때 대표이사로서 진 연대보증 채무를 갚지 못한 결과다. 정부가 내놓은 5·15 창업정책에 대해 이 교수가 “벤처 육성 의지는 높이 살 만하지만 창업을 활성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했다. 서울 도곡동에 있는 KAIST 연구실에서 이 교수를 만났다.

◆신불자제도 시대 안 맞아

이 교수에게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3년 전이다. 메디슨 대표이사 시절 회사가 신용보증기금에서 500억원을 빌리면서 대표이사로서 연대보증을 선 게 화근이 됐다. 그는 “신보가 출자전환을 통해 받은 메디슨 주식을 1500억원에 팔아 결과적으로 1000억원의 이득을 봤다”며 “그럼에도 연대보증인(이 교수)에게 원금 500억원을 갚으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2중, 3중 청구를 해 가며 기업인을 옥죄는 데 누가 창업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연대보증제는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법인의 경우 여전히 △대표이사 또는 무한 책임사원 △최대주주 △지분 30% 이상 보유자 △배우자 등 합계 지분 30% 이상 보유자 가운데 1명은 연대보증을 서도록 돼 있다.

이 교수는 “연대보증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기업의 애로를 해결해주기 위해 사채동결조치(긴급금융조치)를 전격 시행하면서 기업인들의 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며 “지금은 기업 경영은 물론 금융시스템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해졌기 때문에 제도를 폐지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인에 대한 연대보증제 대신 보증기관의 보증 수수료율을 크게 올리거나 주식을 담보로 대출해주는 등의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이번에 파격적인 엔젤 투자 및 인수합병(M&A) 정책을 내놨지만 그 역시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역시 연대보증제를 개선해 나 같은 사례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해줘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창업이 신성장동력 원천


창업을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신성장동력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고용 창출은 한계에 봉착했고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중국에 위협받고 있어 창업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 ‘혁신시장’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혁신시장은 제품이나 서비스처럼 특허나 기술, 기업이 통째로 거래되는 시장”이라며 “제한된 공개 시장으로서 창조성이 거래될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화 교수는 1953년 대구 출생으로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KAIST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지금은 KAIST 초빙교수와 한국디지털병원 수출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사진=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