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영국 런던의 금융중심지 ‘런던시티(London City)’에 있는 대형 오피스빌딩을 싱가포르투자청(GIC)으로부터 5735억원에 사들인다. 국내 보험사가 지금껏 사들인 해외 부동산 중 최대 규모 투자다.

런던시티 내 그레샴가(街)에 자리잡은 이 빌딩은 대지 4046㎡(약 1224평)에 연면적 3만7421㎡(1만1320평) 규모로 독일 코메르츠방크의 영국본사로 사용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삼성생명이 승인을 신청한 ‘런던시티 내 오피스빌딩 투자를 위한 자회사 설립’ 안건을 의결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사가 자회사를 설립하려면 해당 보험사의 재무건전성 및 자산운용한도, 자회사의 업종 및 재무건전성 등 요건이 충족하는지에 대한 금융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금융위가 이날 삼성생명의 자회사 설립을 승인함에 따라 삼성생명은 이달중 GIC와 본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2월 GIC와 빌딩 매입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으며, 이후 실사까지 끝마친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생명이 자회사를 설립하는 이유는 곧 체결될 빌딩 매매계약이 GIC와 삼성생명이 각각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코메르트방크 영국본사’ 빌딩을 직접 취득하지 않고 조세회피지역인 영국령 채널제도(Chanel Islands)의 저지(Jersey)섬에 SPC를 설립해 건물 소유주인 GIC의 자회사로부터 지분을 100% 취득하게 된다. GIC는 2005년 SPC를 통해 이 빌딩을 4681억원에 사들인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런던시티에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대부분 조세회피지역에 SPC를 설립하는 방식을 활용한다”며 “취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다 만약에 발생할 수 있는 투자위험을 최소화할 수도 있어 유리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생명이 이 빌딩을 직접 매입하면 5735억원의 4%인 약 230억원을 취득세로 내야 하지만 SPC를 설립해 지분을 취득하면 인지세(약 10억원)만 내면 된다. 빌딩에 화재가 나거나 세입자들과 분쟁이 생겨도 삼성생명이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장점도 있다.

런던시티에 투자할 때 누릴 수 있는 각종 혜택도 이번 투자 결정의 배경이다.

런던시티 내 빌딩을 매입하면 되팔때 양도소득세가 면제된다. 특히 현지의 부동산 임대차 계약기간이 대부분 20년 이상 장기인 만큼 투자자 입장에선 안정적인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삼성생명이 이번에 사들이는 빌딩의 임대 수익률은 연 5.2%로 서울 강남의 오피스 빌딩보다 2~3%포인트 높다. GIC가 코메르츠방크와 체결한 임대차 계약기간도 16년이나 남아 있다.

삼성생명이 이처럼 해외 부동산 투자에 본격 나선데는 저금리 기조로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는 자산운용수익률이 크게 작용했다.

2012회계연도(2012년4월~2013년3월) 삼성생명의 자산운용수익률은 4.3%다. 2010회계연도 5.8%, 2011회계연도 4.7%에 이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 부회장은 최근 “앞으로 연 5%대 수익률을 낼 수 있는 해외 부동산 투자라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적극적인 해외투자를 예고하기도 했다.

국내 1위 보험사인 삼성생명이 해외 투자를 본격화함에 따라 다른 대형 보험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도 잇따를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신규 투자처 발굴할 수 있도록 대체투자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보험상품에서 역마진을 겪고 있어 자산운용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며 “해외 부동산 시장은 자산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임대수익에 따른 안정적인 현금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은 작년 10월 사모부동산펀드를 통해 런던시티 내 빌딩(국제법률회사 ‘에버쉐즈’ 본사)을 약 2500억원에 매입한 바 있다. 류시훈/김은정 기자 bada@hankyung.com



☞런던시티(London City):뉴욕의 월스트리트와 비슷한 영국의 금융중심지구로 면적은 서울 여의도와 비슷하다.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을 비롯해 600여개 금융회사가 밀집돼 있다.

영국내 증권·선물·외환거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런던시티에서 창출되는 부는 영국 전체 GDP의 3%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