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하는 남자] "젊게 보이는 것도 능력"…화·장·男·전·성·시·대
#1. 무역회사에 다니는 최진웅 씨(32)는 매일 스킨부터 에센스, 로션, 수분크림, 비비크림까지 다섯 가지 화장품을 쓴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준수한 외모라는 소리를 듣는 최씨지만 “일찍부터 관리해야 피부가 늙지 않는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2. 중견기업 임원 장진수 씨(49)는 중장년 남성 전용 한방화장품을 챙겨 바르고, 주말엔 거실에서 자녀들과 함께 마스크팩도 한다. 장씨는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인데 얼굴부터 늙어 보이면 은퇴 시기도 그만큼 빨라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최씨나 장씨처럼 피부 관리에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화장남’은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흉이 아니다. 군인들도 내무실에서 사제 화장품을 쓰고, 환갑을 바라보는 최고경영자(CEO)들도 거울을 보며 주름을 고민하는 시대다.

요즘 화장품 매장에는 스킨, 로션, 거품 세안제, 자외선 차단제, 마스크팩부터 비비크림, 컨실러 등 수십 종에 이르는 남성 전용 제품이 가득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남용우 아모레퍼시픽 미용연구팀장은 “남성 화장품 시장이 본격 성장한 것은 한국 사회의 치열해진 생존 경쟁과 무관치 않다”며 “새하얀 피부나 안티 에이징(노화 방지)이 더 이상 여성만의 화두가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은 스킨, 로션, 에센스처럼 수분·영양 공급을 목적으로 쓰는 기초화장품을 평균 2.3개 사용한다. 여성(평균 3.2개)과 큰 차이가 없다. 자외선 차단제 같은 기능성 화장품을 쓰는 남성도 56%에 달한다. 또 10명 중 1명(9.2%)은 비비크림, 파우더, 파운데이션 같은 색조 화장품까지 썼다.

이 같은 ‘화장남 열풍’에 힘입어 올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1조3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LG생활건강 추산). 1981년 103억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32년 만에 정확히 100배 커진 것이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최근 5년간 연평균 15%씩 성장해온 ‘블루 오션’으로 꼽힌다.

[화장하는 남자] "젊게 보이는 것도 능력"…화·장·男·전·성·시·대
대표적 남성 전용 화장품인 아모레퍼시픽의 ‘헤라 옴므’, LG생활건강의 ‘보닌’, 에스티로더의 ‘랩시리즈’, 로레알그룹의 ‘비오템옴므’ 등은 연 매출 수백억원대의 메가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P&G가 ‘SK-Ⅱ’ 남성용 제품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하는 등 한국 남성에 대한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의 ‘예우’도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

남성 화장품은 연령대와 기능성에 따라 세분화되는 추세다. 중장년 남성을 겨냥한 고급 한방 화장품인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정양라인’, LG생활건강의 ‘후 군’은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백화점에서 인기다. 더페이스샵, 이니스프리, 토니모리, 스킨푸드 등 중저가 브랜드숍들은 군인 전용 화장품을 출시해 폭발적 반응을 얻기도 했다. 탄탄한 식스팩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는 복근 강화 젤, 취침 전 바르고 자면 아침에 피부가 더 촉촉해진다는 나이트 크림, 탈모를 줄여준다는 남성 두피 전용 샴푸 등 독특한 기능성을 앞세운 제품도 쏟아지고 있다.

현두리 더페이스샵 브랜드매니저는 “남자들이 화장품을 소비하는 방식도 입문 단계에서 고수까지 차례대로 올라가게 돼 있다”며 “좋은 제품을 써서 일단 효과를 보면 사용을 중단하기가 쉽지 않고 더 좋은 제품을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