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엽 또 승부수 > 팬택이 삼성전자에서 5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은 창업주인 박병엽 부회장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박 부회장이 작년 5월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 베가레이서2를 발표하는 모습. /한경DB
< 박병엽 또 승부수 > 팬택이 삼성전자에서 53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것은 창업주인 박병엽 부회장의 아이디어로 알려졌다. 박 부회장이 작년 5월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 베가레이서2를 발표하는 모습. /한경DB
삼성전자가 ‘팬택 살리기’에 나섰다. 휴대폰 제조업체 팬택은 삼성전자로부터 제3자 배정방식 유상증자를 통해 530억원을 투자받는다고 22일 발표했다. 스마트폰 시장 1위 업체인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3위 업체 팬택에 투자한 것은 이례적이다.

○삼성, 왜 경쟁사 지원?

삼성전자는 팬택 지분 10.03%를 갖게 된다. 퀄컴(지분율 11.96%)과 산업은행(11.81%)에 이어 팬택의 3대 주주가 된다. 다만 삼성전자는 팬택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삼성 LG 팬택으로 이뤄진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의 ‘3사 구도’를 유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팬택이 쓰러지면 삼성의 독점적 지배 구조가 여실히 드러나 정부의 규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6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거래처 보호’ 측면도 작용했다. 팬택은 삼성 그룹 계열사 간 거래를 제외하면 국내에선 삼성의 가장 큰 부품 거래처다. 팬택이 지난해 삼성전자·전기·SDI 등에서 사들인 액정표시장치(LCD), 배터리, 인쇄회로기판(PCB) 등 부품은 2353억원어치다. 지난 5년간 8116억원어치의 부품을 구매했다.

삼성이 팬택을 인수할 의지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이 투자액(530억원)을 팬택 지분율 10%에 맞춰 3대 주주에 머무른 것도 ‘인수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박 부회장은 22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애초 삼성과 논의했던 금액은 1000억원이었는데 1대 주주로 올라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해 금액을 낮췄다”고 설명했다. 그는 “삼성이 국내 휴대폰 산업에 대해 강한 책임의식을 갖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그는 “10여개 전자 회사 중 국내에 살아남은 건 세 곳뿐”이라며 “팬택은 경쟁사이기도 하지만 큰 틀에선 없어서는 안 될 거래처”라고 했다. 박 부회장은 “올 3분기까지 적자 규모를 최대한 줄이고 4분기부터 흑자 전환할 것”이라며 “2000억원가량 수혈해 부채비율을 200%대까지 떨어뜨리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530억 투자…'팬택 살리기' 나섰다

○팬택 살아날까

한때 국내에서 대표적인 ‘제조 벤처 성공신화’로 불렸던 팬택은 2006년 불어닥친 모토로라의 휴대폰 ‘레이저’ 열풍과 국내외 금융환경 악화로 2007년 4월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2011년 말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지난해 3분기 17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21분기 만에 분기적자로 돌아섰다. 결국 지난해 5년 만에 726억원의 적자를 내며 자금난에 부닥쳤다.

스마트폰 시장이 기술력이나 제품 품질보다는 브랜드에 좌우되고 있는 상황에서 팬택은 외부 투자자금을 수혈받아 마케팅과 연구개발(R&D)에 투자함으로써 브랜드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업계 최고 기업인 삼성이 팬택에 투자를 결정한 만큼 앞으로 자금 수혈은 좀 더 쉬워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우리은행도 팬택의 요청에 따라 1000억원 정도의 운영자금 지원을 검토 중이다. 산은과 우리은행은 팬택에 500억원씩 지원하기로 하고 내부 실사를 벌이고 있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팬택이 충분한 ‘실탄’을 확보하면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 LG전자와의 ‘2위 쟁탈전’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며 “팬택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 판로도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성미/장창민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