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맨 왼쪽)이 1961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주 앉아 선글라스를 쓴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박정희(기파랑)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맨 왼쪽)이 1961년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마주 앉아 선글라스를 쓴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박정희(기파랑)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차관 원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동갑내기(1917년생) 케네디는 매몰차게 거절했고 박 전 대통령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52년이 흐른 2013년 박 전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돼 다시 미국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 방문은 반세기 격차만큼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시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일방적 요청이 아닌 동반자로서 대등한 위치에서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당당한 외교 닮은꼴

박 전 대통령은 1961년 11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첫 방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케네디를 만나 5·16 군사 쿠데타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기자였던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케네디가 ‘원조를 받는 나라에는 차관을 해줄 수 없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고 회고했다.

지원을 요청하는 입장에서 정상회담에 임했지만 케네디와 마주 앉아 검정 선글라스를 낀 채 담배를 피우던 박 전 대통령의 당당한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훗날 “상대방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할 때 내 마음이 얼굴 표정에 나타날까봐 색안경을 썼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초등학생으로 부친의 첫 미국 방문을 기억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번 방미에 대한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초청 특강에서도 박 전 대통령과 케네디 간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이 새로운 안보 질서의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 딸이 다시 미국을 찾아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이번 방미 정상회담에서 6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과 북한 문제, 경제 협력 관계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일방적 요청이 아닌 대등한 위치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의견을 나눌 것”이라며 “52년 전 부친이 했던 대로 떳떳한 자세로 당당하게 임한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흘걸려 미국 간 박정희

박 전 대통령은 첫 방미 당시 국력을 반영하듯 외국 민항기와 미군 수송기를 빌려 타고 도쿄-앵커리지-시애틀-시카고 등 네 곳에서 중간 기착한 뒤 사흘 만에 워싱턴DC에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땅에 도착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케네디와 두 차례 정상회담을 마친 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13박15일간의 방미 일정을 마쳤다.

박 대통령의 이번 방문지 역시 워싱턴DC와 뉴욕 로스앤젤레스(LA) 등으로 당시와 비슷하다. 정상회담을 포함해 공식 일정만도 20개에 달한다. 하지만 방문 기간은 4박6일(5~10일)로 당시의 절반도 안 된다. 비록 전용기는 없지만 국적기인 전세기를 타고 갔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수행단 규모도 비교가 안 된다. 박 전 대통령 첫 방미 때는 수행단이 고작 15명이었다. 대부분 내각 및 경호 멤버였고, 기자는 1명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미는 수행단 규모가 200명이 넘는다. 삼성 현대차 LG 등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오른 대기업 총수를 비롯해 52명의 기업인이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하고, 방미 취재단도 80명에 달한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