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지식재산권 펀드 논란
요즘 금융계 관계자들을 만나면 ‘창조금융’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뭘 해야 창조금융이라는 소리를 듣겠느냐는 하소연이다. 대개 기술기반 금융, 프로젝트 기반 금융을 창조금융으로 어림짐작하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세간에 창조금융의 유력한 모델로 거론되는 게 산업은행의 지식재산권(IP) 펀드다. 기업이 보유한 특허권이나 상표권을 사들인 뒤 이를 기업에 사용료를 받고 다시 빌려주는(sales and license back) 구조다. 기업은 일단 현금을 마련하고, 펀드 투자자는 고정적인 사용료 수입을 갖는다. 산업은행은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목표인 창조경제를 실천하는 펀드”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산업은행의 자부심과 달리 IP펀드에 대한 시장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말만 번지르르하지 그게 담보대출 아니고 뭐냐”며 혹평하기도 한다. 기업대출 때 지금까지 부동산이나 기계 선박 등의 실물을 담보로 잡던 것을 특허권·상표권 등으로 넓혔다는 점 말고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그래도 국내에서 처음 하는 것인데 ‘평이 너무 야박하지 않느냐’고 하면 답답하다는 듯 대개 일장 연설이 돌아온다. 해외에서 IP펀드라 하면 특허 등을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 연결해 주거나, IP에 기반해 인수·합병(M&A)을 추진하거나, IP 경매, 특허소송 등의 굉장히 다양한 역할을 담당하는 데 비해 산업은행의 IP펀드는 전혀 다른 성격이라는 주장이다.

새 금융기법에 대한 호감도가 크기 마련인 증권가에서도 반응은 비슷하다. ‘리스크를 별로 지지 않는 손쉬운 구조’라며 평가절하한다. 기술에 투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정화된 상태의 기술이나 상표권을 담보로 내주는 대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산업은행의 새로운 시도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당장 자금이 없는 기업에 추가로 부동산을 담보로 내놓으라거나, 고금리 대출을 해 주는 것과 비교하면 분명 진일보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상품조차 개발하지 않고 지금껏 게으르게 지내온 다른 금융사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다. 하지만 ‘윗선’의 입맛에 맞게 실체를 과대포장하는 데 급급한 인상이 드는 점은 아쉽다. 그보다는 스스로 리스크를 감내하며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구조를 설계해 낸다면 평가는 자연히 뒤따를 것이란 생각이다.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