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의 씁쓸한 '80억 위약금'
홈플러스는 지난해 중소건설사가 짓는 건물에 입점 계약을 체결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위약금으로 80억원 가까운 돈을 날리게 됐다. 운영 자금은 충분했지만 대형마트에 대한 사회적 비난 분위기 탓에 출점을 포기한 것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적은 돈이 아니지만, 나중에 뭇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해를 감수하고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신규 출점을 준비하던 대형마트들이 여론에 등 떠밀려 수십억원대 손해를 떠안고 잇따라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 또 사업 추진 과정에서 법적 소송에 발목이 잡혀 포기하는 등 ‘대형마트 수난 시대’가 계속되는 모습이다.

◆‘눈치’ 보느라 계약 포기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4민사부(부장판사 임복규)는 지난해 H건설이 “부지 매매 계약을 해놓고 계약금 79억5000만원을 지불하지 않아 피해를 봤다”며 홈플러스를 상대로 낸 위약금 소송에서 1일 원고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손해 배상 예정액이 고액이기는 하지만 매매대금이 거액이어서 피고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계약이 체결됐다고 볼 수 없다”며 홈플러스 측이 계약금 전액을 위약금으로 물어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홈플러스가 사업도 못 해보고 거액을 물어주게 된 것은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초 H건설이 짓는 서울 대조동의 호텔복합 건물에 입점하기 위해 총 795억원 규모의 건물 2개 층 부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금액의 10%는 계약금으로 같은 해 3월 초까지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사이 대형마트의 골목 상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거세졌다. 홈플러스 측은 H건설 측에 “일단 분위기를 지켜보자”며 계약 시기를 미뤄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다음 달인 4월 대형유통 업체의 의무휴업 등을 기본으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되면서 상황은 더욱 얼어 붙었다. 결국 같은 해 6월 홈플러스는 매매계약 철회를 통보했고, H건설은 홈플러스를 상대로 법원에 위약금 소송을 냈다.

◆다른 마트도 줄줄이 수난

홈플러스뿐 아니라 다른 대형마트들도 비슷한 이유로 전국 곳곳에서 신규 사업에 수난을 겪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광주시 매곡동에 갖고 있던 약 1만㎡의 부지를 지난해 말 기존 소유주였던 한 시행사에 되돌려줬다. 신규 점포를 세우기 위해 2010년 말 부지를 사업 조건부로 사들였지만, 광주 북구청이 건축허가 취소 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마트는 이에 불복, 광주 북구청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잇따라 패소하고 결국 땅을 돌려줘 일부 손해를 입었다.

롯데마트도 서울차이나타운 개발이 예정됐던 경기 고양 지역에 점포를 내기 위해 2011년 말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했지만 지역 반발로 난항 중이다. 서울차이나타운 개발 추진위 등은 법원에 매각 절차 진행 금지 및 매각 승인 취소 가처분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포항 두호동에 들어서는 호텔 복합건물에도 계약을 추진했으나 포항시 의회 측 반려로 무산될 위기라고 업계 관계자는 전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들어서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데 무조건 비난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당분간은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신규 출점을 자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