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계열사 잇단 합병…효성 3세들 자회사 경영 손 떼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려는 대기업이 늘고 있다. 내부거래 물량을 인위적으로 낮추는가 하면 아예 계열사를 합병하는 곳도 나온다. 정치권이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법(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스스로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현대차그룹이 17일 계열사 간 내부거래 중 국내 광고·물류 거래 물량을 중소기업 등 외부업체에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는 6000억원 상당의 국내 광고·물류 발주물량을 중소기업 등에 직접 발주하거나 경쟁입찰을 붙이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서울모터쇼 현대차 부스를 제작하는 사업권을 이전까지는 계열사인 이노션에 맡겨왔다면 앞으로는 중소 광고회사에 수의계약 또는 경쟁입찰을 통해 맡기겠다는 얘기다.

현대차가 이런 결정을 내린 까닭은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감안해서다. 현대차는 그동안 대부분의 광고, 프로모션, 이벤트사업을 이노션에 맡겨왔다. 현대·기아차의 국내외 완성차 운송, 부품 운송은 글로비스가 사실상 전담했다. 작년의 경우 이노션의 국내 광고사업 매출 중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은 52.7%(2005억원), 글로비스의 국내 물류사업 매출 중 내부거래 비중은 82%(1조455억원)였다.

내부거래 비중을 줄인 곳은 현대차뿐만 아니다. SK그룹의 경우 지난해 SK케미칼이 한국수면네트워크를, 유비케어가 에버헬스케어를 합병했다. 올해에도 SK브로드밴드가 브로드밴드미디어를 흡수 합병했고, 지난달엔 SK C&C가 자회사인 중고차 매매업체 SK엔카를 흡수 합병하기로 결정했다. 계열사를 합병해 내부거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또 SK 주요 계열사들은 그룹 내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SK C&C와의 거래 물량을 축소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SK텔레콤과 SK이노베이션이 올해 SK C&C와의 거래 규모를 각각 10% 이상 줄일 예정이다.

태광그룹은 지난 12일 정보기술(IT) 서비스를 하는 티시스, 골프장을 운영하는 동림관광개발, 자산관리 사업을 하는 티알엠 등 3개 계열사를 합병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모두 이호진 전 회장 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곳이다.

포스코도 지난해 광고대행 계열사 포레카의 매각을 시도했다. 제철 플랜트 건설공사도 계열사인 포스코건설에 수의 계약으로 맡기는 대신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했다.

효성그룹 오너 일가가 비상장 자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는 것도 내부거래를 줄이려는 시도다. 오너 일가가 경영 2선으로 물러나면 내부거래로 오너 일가가 이익을 취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조석래 회장의 3남인 조현상 효성 부사장은 이날 렉서스 판매사인 더프리미엄효성과 효성토요타의 사내이사, 노틸러스효성 비상무이사에서 물러났다.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은 15일 벤츠 딜러사인 더클래스효성의 감사직을 내놨다. 조 부사장도 이 회사의 사내이사를 사임했다.

재계는 내부거래를 줄이려는 노력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부정적 사회 여론을 가라앉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부당 내부거래 기준과 제재를 강화하고 △부당 내부거래에 관여한 총수 일가(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경우)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논의 중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현대차 등 22개 그룹 112개사가 ‘제재 사정권’에 들 것이란 조사 결과가 있을 만큼 재계가 받는 ‘압박’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태명/윤정현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