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김정은, 자신의 안위부터 걱정하라
남한과 북한을 잇는 마지막 끈이었던 개성공단 가동이 끝내 중단됐고, 북이 미국 영토인 괌을 사정거리로 둔 무수단 미사일로 장난치면서 긴장은 더 갈 데 없는 최고수위로 끓어오르고 있다. 북은 그동안의 ‘말폭탄’ 단계를 넘어 작심하고 벼랑끝 너머 한 걸음을 더 나아가고 있다. 외국인들이 돈을 빼가면서 시장이 동요하는 양상도 예사롭지 않다. 지난 수십년 북의 웬만한 도발에는 끄덕하지 않고 차분한 일상을 이어온, 그래서 외국 언론들이 기이하게 여기는 우리 국민의 평상심이 흔들리고 있는 건지 요즘 전쟁을 걱정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확실히 북한은 지금 지나치게 내달리고 있다. 지난 2월 3차 핵실험 이후 전쟁을 입에 담지 않은 날이 거의 없다. 정전협정과 남북 간 불가침 선언 백지화, 군 통신선 단절, 전군에 1호 전투근무태세 발령, 남북 간 전시상황 선언, 6자회담의 10년 명맥을 완전히 끊는 영변 핵시설 재가동, 중거리 미사일 이동과 발사 준비, 평양주재 외국 공관의 철수 권유가 이어졌다. 이제 남한 내 외국인들에게 신변안전을 위한 대피 대책을 세우라고 협박하고 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고 있다.

그동안 북이 우리를 향해 퍼부은 광기(狂氣)의 극언들은 옮기기조차 힘들다. “무자비한 보복 성전” “열핵전쟁 전야” “적진을 아예 벌초해 버리라” “멸적의 불도가니에 쓸어넣으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 “적들의 허리를 부러뜨리고 명줄을 완전히 끊어 놓으라”는 식이다.

끔찍한 전쟁 시나리오도 나온다. 최근 미국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북의 도발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한·미 연합군의 당연한 승전에도 불구하고 1차 세계대전 수준의 엄청난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1차 대전 당시 19개국 사상자 약 3252만명에 맞먹는 피해라면 현재 남북한 인구 약 7500만명의 40%를 넘는다. 2004년 한·미 연합군의 워게임 시뮬레이션에서는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 수도권 시민과 국군, 주한미군 사상자가 230여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북의 대대적인 장사정포 공격이 서울과 수도권에 거미줄처럼 깔린 각종 가스관과 유류 저장시설, 전기·통신시설 등을 파괴해 치명적인 참화를 불러올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북은 또 대량살상무기인 생화학탄 사용을 서슴지 않을 것이고, 만약 핵공격까지 더해진다면 그 피해는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막대한 인명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십년 우리가 어렵게 쌓아올린 경제적 성취가 일순간 잿더미로 변할 수 있다.

돈이든 식량이든 북이 달라는 대로 퍼주고 어떻게든 그들을 달래야 평화가 지탱될 수 있다며 저자세로 일관했던 과거의 햇볕정책도 사실 그 공포에 짓눌린 탓이 크다. 그러나 우리가 준 돈은 핵협박으로 되돌아왔고 전쟁 위기만 더 키웠다. 북은 가당치도 않은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을 내세워 박근혜정부를 길들이려 한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패한 햇볕정책 주역들은 여전히 미망에 갇혀 지금 최악의 상황이 이명박정부 이후 북의 자존심을 무시해 비롯된 것이라며 특사 파견까지 거론한다.

북의 자존심을 지켜준 남북관계는 어땠나. 북은 언제나 제멋대로 시간과 장소를 통지해 우리 쪽 사람들을 호출했고, 일방적 요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들 마음대로 돌아가라 마라 상전이 하인 부리듯 우리를 길들였다. 그들을 거스르는 것은 금기였다. 대한민국의 국가적 존엄은 팽개쳐진, 북에 대한 굴종(屈從)이 관계의 실체였다. 이명박정부 이전 10년간 북측과 접촉했던 실무관료들의 증언이다.

물론 전쟁보다 더한 재앙은 없다. 그러나 평화는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고 돈으로 살 수도 없다. 타협이 아니라 도발에 대한 확실한 응징, 전쟁에서의 승리로만 얻어낼 수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이 끝내 전쟁을 도발한다면 그 결과는 압도적 전력의 한·미 연합군에 의한 북한 3대 세습정권 멸망, 북한이라는 국가의 소멸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 핵무기를 앞세워 전쟁에 광분하고 있는 ‘최고존엄’ 김정은부터, 또 북한 정권 어느 누구도 그 무모한 전쟁에서 스스로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실로 의문이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