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된 복지' 경고등] 폭증하는 복지 업무 '행정직'으로 돌려막기…민원 현장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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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담당 공무원의 잇따른 자살은 '인재'
해묵은 칸막이 풍토…신참 오면 고참은 손 떼는 구조
정부, 복지 외칠때 현장선 "공문 읽을 시간조차 없어"
해묵은 칸막이 풍토…신참 오면 고참은 손 떼는 구조
정부, 복지 외칠때 현장선 "공문 읽을 시간조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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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지난해 초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경기 지역 어느 주민센터에서 한창
일을 배우고 있던 중 선임자가 갑자기 일반행정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민원인들의 긴 줄이 주민센터
입구까지 흘러내렸다. 무상보육뿐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 기초노령연금 등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는 서서히 지쳐갔다. 온몸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일이 몰리면 눈물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력만 늘리면 된다고?
정부는 얼마 전 사회복지 공무원 증원을 당초보다 앞당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2300명을 늘리고 복지직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도 했다. L씨처럼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복지직 공무원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다. 사람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만두면 될 일을 단순히 업무가 많다고 죽음을 선택하겠느냐고 반문한다. L씨의 지인은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복지 공무원을 지망한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민원인들에게 그만큼 무책임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이 많아도 제대로 말도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죠.”
그 고립감이 우울증과 결합해 죽음으로 내몬다는 얘기다.
◆칸막이 문화 없애야
사실 많은 전문가는 이것이 복지행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행정직과 복지직의 해묵은 칸막이 문화다. 대개
행정직은 복지업무를 기피한다. 일도 많지만 승진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복지담당 공무원을 대폭 늘리면서 일반행정직을 복지직에 파견 형태로 대거 투입했다. 2007년부터는 전체 복지 공무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일반행정직은 그 자리에 오래 있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칸막이 문화는 정부의 지침도
무력화시켰다. 2009년 5월 행정안전부는 “사회복지 담당 인력 비중을 동사무소 직원 전체의 40%로 늘리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이 방침을 수용한 지자체는 거의 없었다. 행안부도 사후 관리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읍·면·동 주민센터 3474곳 가운데
복지담당 공무원이 한 명인 곳이 1448곳(41.7%), 두 명인 곳은 1390곳(40%)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신규 복지
인력 채용은 기존 행정직에 복귀 구실만 제공하는 꼴이 됐다. 역량으로 보면 순증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 명이 400명 상대
정치인, 정부,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입에 복지를 달고 산다. 그러나 일선에서 이 업무를 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깊지 않다.
서울 모구청 관계자는 “영세 기업조차 업무량을 감안해 투입 인력 수를 결정하는데 중기 계획에 따라 나라 살림을 짜는 기획재정부나
안전행정부는 아예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2004년 44조원 수준이던 복지예산은 올해
1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다. 복지 대상자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 2004년 240만명에서 최근 100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사회복지 공무원(정원)은 2005년 9920명에서 최근 1만3000명 선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반행정직까지
포함해도 복지담당 공무원은 2만5000명을 밑돈다. 한 명이 400명 이상을 상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남 함안군 칠원면의 한 복지담당 공무원은 “정부가 수시로 이런저런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솔직히 그거 읽어볼 시간도 없다”고 토로했다.
하헌형/강경민 기자 junyk@hankyung.com
씨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 것은 지난해 여름부터였다. 지난해 초 사회복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경기 지역 어느 주민센터에서 한창
일을 배우고 있던 중 선임자가 갑자기 일반행정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민원인들의 긴 줄이 주민센터
입구까지 흘러내렸다. 무상보육뿐만 아니라 기초생활수급 기초노령연금 등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는 서서히 지쳐갔다. 온몸에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일이 몰리면 눈물부터 나기 시작했다. 그는 얼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력만 늘리면 된다고?
정부는 얼마 전 사회복지 공무원 증원을 당초보다 앞당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2300명을 늘리고 복지직에 인센티브를
주겠다고도 했다. L씨처럼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복지직 공무원들의 반응은 의외로 차갑다. 사람을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만두면 될 일을 단순히 업무가 많다고 죽음을 선택하겠느냐고 반문한다. L씨의 지인은 한국경제신문 취재진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복지 공무원을 지망한 사람들은 생래적으로 남한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민원인들에게 그만큼 무책임한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이 많아도 제대로 말도 못하고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죠.”
그 고립감이 우울증과 결합해 죽음으로 내몬다는 얘기다.
◆칸막이 문화 없애야
사실 많은 전문가는 이것이 복지행정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진단한다. 행정직과 복지직의 해묵은 칸막이 문화다. 대개
행정직은 복지업무를 기피한다. 일도 많지만 승진에 지장이 생길 수도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복지담당 공무원을 대폭 늘리면서 일반행정직을 복지직에 파견 형태로 대거 투입했다. 2007년부터는 전체 복지 공무원의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일반행정직은 그 자리에 오래 있으려 하지 않았다.
이런 칸막이 문화는 정부의 지침도
무력화시켰다. 2009년 5월 행정안전부는 “사회복지 담당 인력 비중을 동사무소 직원 전체의 40%로 늘리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이 방침을 수용한 지자체는 거의 없었다. 행안부도 사후 관리를 하지 않았다. 지난해 읍·면·동 주민센터 3474곳 가운데
복지담당 공무원이 한 명인 곳이 1448곳(41.7%), 두 명인 곳은 1390곳(40%)에 이르렀다. 이러다 보니 신규 복지
인력 채용은 기존 행정직에 복귀 구실만 제공하는 꼴이 됐다. 역량으로 보면 순증이 아니라 오히려 감소가 일어나는 것이다.
◆한 명이 400명 상대
정치인, 정부, 광역자치단체장들은 입에 복지를 달고 산다. 그러나 일선에서 이 업무를 해야 할 사람들에 대한 고려는 깊지 않다.
서울 모구청 관계자는 “영세 기업조차 업무량을 감안해 투입 인력 수를 결정하는데 중기 계획에 따라 나라 살림을 짜는 기획재정부나
안전행정부는 아예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2004년 44조원 수준이던 복지예산은 올해
1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불어났다. 복지 대상자는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 2004년 240만명에서 최근 1000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사회복지 공무원(정원)은 2005년 9920명에서 최근 1만3000명 선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반행정직까지
포함해도 복지담당 공무원은 2만5000명을 밑돈다. 한 명이 400명 이상을 상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경남 함안군 칠원면의 한 복지담당 공무원은 “정부가 수시로 이런저런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솔직히 그거 읽어볼 시간도 없다”고 토로했다.
하헌형/강경민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