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영장 없이 위법한 수사로 확보한 증거는 인정할 수 없지만, 이후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진술서를 제출하고 법정에서 자백했다면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백화점 등에서 구두와 의류 등을 훔친 혐의(특가법상 절도)로 기소된 전모(60·여)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매출전표 거래명의자 정보를 확보한 조치는 위법하고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도 부정돼야 한다"면서 "이를 심리하지 않고 증거능력을 인정한 1, 2심의 조치는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구속영장 기각 이후 석방된 피고인이 피해품을 수사기관에 임의로 제출했고 이어 1심 법정에서도 자백한 것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이뤄져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면서 "원심의 잘못은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므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 결론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전씨는 지난해 초 대구의 한 백화점 매장에서 여성복을 입어본 뒤 이를 반납하지 않고 종업원 눈을 피해 달아났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전씨가 벗어놓은 점퍼에서 신용카드 매출전표를 발견, 카드회사에 공문을 보내 전씨의 인적사항을 알아냈고 절도 범행 용의자로 긴급체포했다.

전씨 집에는 옷 외에도 이전에 훔친 것으로 보이는 구두 등이 발견됐다.

경찰이 전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법관의 영장 없이 카드 매출전표의 인적사항을 알아낸 조치는 위법하다"며 기각했다.

전씨는 그러나 석방 이후 경찰서에 출석한 자리에서 구두 절도 등을 자백하면서 자발적으로 피해품을 경찰에 제출했다.

또 절도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6월 열린 1심 공판에서 범죄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은 영장 없이 인적사항을 제출받은 행위는 위법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면서 "다만 피고인이 석방 이후 공개 법정에서 범행을 모두 자백하거나 진술서를 제출한 것은 2차 증거로 절차적 위법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박대한 기자 pdhis9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