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중국이 문화 강국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중국 국영기업 거화(歌華)문화개발그룹이 베이징국제공항 근처에 50억위안(약 9000억원)을 투입, 문화예술 분야 자유무역지대를 만든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서 거래되는 모든 문화예술품에 대해 수입 관세 34%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베이징국제문화무역센터’라는 이름으로 내년 중 개장하는 이곳은 고가 예술품의 대형 창고 역할과 함께 명품, 디자인, 방송, 영화 등 문화 관련 업체가 한데 모인 복합 문화단지 역할을 맡는다. WSJ는 “1990년대 자유무역항 건설로 세계 제조업 기지로서의 황금기를 맛본 중국이 똑같은 방식으로 문화 강국의 꿈을 이루려 한다”고 평가했다.

◆예술품 수입 관세 34% 면제

거화그룹은 베이징국제문화무역센터 건설을 위해 3년 전부터 영국 경매회사 소더비와 접촉, 지난해 9월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지분의 80%는 소더비가 갖고 10년간 경매시장 개최 등에 협력한다는 조건이다. 왕유동 거화그룹 이사는 “경매시장뿐 아니라 영화, 방송, 디자인, 미술 등 모든 문화 산업이 한데 모여 할리우드(영화), 실리콘밸리(IT), 뉴욕 첼시마켓(미술)을 합친 듯한 복합 문화무역센터를 만들 것”이라며 “2016년까지 해외 기업 등 50개 기업을 유치, 500억위안의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거화그룹은 또 싱가포르 자유무역항 운영자인 유로아시아인베스트먼트와 투자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고가의 예술품을 세금 없이 거래할 수 있고 보안 설비가 뛰어난 싱가포르 자유무역항을 여러 번 방문해 벤치마킹했다. 토니 레이나드 유로아시아 회장은 “처음엔 베이징국제문화무역센터 건설이 터무니없어 보였으나 최근 중국 문화 산업이 급팽창하면서 기회의 땅임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中 ‘문화 강국 건설’ 신호탄

베이징국제문화무역센터 건설은 중국 공산당이 지난해 국가 발전 목표로 설정한 문화 강국 건설 계획의 첫 신호탄이다. 중국 문화 산업은 연평균 21%씩 급성장(2008~2012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문화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5%로 미국 18%, 영국 11%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다.

WSJ는 베이징국제문화무역센터 건설이 중국 문화 산업의 급팽창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해석했다. 중국 미술시장은 2년 전부터 세계 1위 규모로 성장, 2011년 그 규모가 181억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중국 영화 박스오피스(극장수입)도 27억달러의 매출을 올려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다.

중국 정부는 2009년부터 ‘문화재산권 거래소’도 운영하고 있다. 문화상품 투자, 문화기업 주식과 채권, 문화재산권 등기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수료로 운영하는 종합형 금융투자기관이다. 상하이 선전 등 18개 성 또는 시에 현재 26개 거래소가 세워졌다. 상하이문화재산권거래소(SCAEE)에 등록된 항목은 2000개, 거래액은 연 152억위안에 달한다.

중국 정부의 베이징국제문화무역센터 건설에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지타오 베이징중앙재경대 연구원은 “생산 원가를 줄여 매출을 극대화하는 제조업과 무형의 문화를 토대로 하는 창조 산업을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것은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창조 산업을 키우려면 수출입 관세 지원이 아니라 인적 자원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자유로운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