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내내 궁금했다. 배우들이 연기하거나, 상당 부분 소설책을 읽어주듯 서술하고 있는 저 무대는 어느 시대와 장소를 배경으로 삼은 걸까. 도입 부분에 10여명의 배우들이 한마디씩 돌아가며 “조개와 김, 낚시터로 알려져 있고 북쪽은 논밭, 서쪽은 바다, 동쪽은 소래강, 남쪽은 ‘백만 평 앞바다’라고 불리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어촌”이라고 극 중 동네를 소개한다. ‘인천 소래포구 남촌도림동’이라는 실존 지명까지 언급한다. 하지만 최신 스마트폰을 든 극 중 화자가 이곳에서 30년 전에 벌어진 일이라며 140여분간 펼쳐 놓는 에피소드들은 ‘과연 국내 어촌 마을에서 벌어졌을 법한 이야기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재일 한국인 3세 연극인 정의신이 대본을 쓰고 연출한 연극 ‘푸른배 이야기’는 30년 전 사방이 막혀 외부와 왕래가 쉽지 않았던 어촌 마을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 3년간 머무르며 마을 사람들로부터 ‘통통배 선생’이라고 불렸던 김성식의 회상을 통해서다.



음탕한 농을 건네는 뚝방집 여자들, 낡고 망가진 푸른 배를 강매하는 뻔뻔한 칠복 할아버지, 부모에게 버림받고 여동생과 함께 거지처럼 살아가는 소녀 말순이, 도박판에서 잃은 돈을 찾고자 집에서 무허가 장사를 하는 황목련 최봉달 부부,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사달라고 조르는 동네 아이들, 나이 많은 미영을 짝사랑하는 청년 광수, 낡은 배에서 첫사랑을 추억하며 홀로 살아가는 선장, 영화를 처음 접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어린 삼식이, 자신이 거둔 여인에게 이용만 당하면서도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춘식.

비루하고 질퍽하지만 소박하고 본능에 솔직한 삶들이 무대 속 무대인 대청마루 같은 공간에서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진다. 1인 다역을 해내는 배우들의 열연이 때론 애잔한 감동을 주고 때론 웃음을 준다.

하지만 성공한 작가로 30년 만에 마을을 찾아온 통통배 선생이 토해 내는 상실감의 공감대는 크지 않다. 무엇보다 사실성이 떨어진다. 이 작품의 원작은 도쿄 근처 한 어촌마을을 다룬 소설이다. 정의신은 이 소설을 일본에서 무대화했고, 이를 다시 한국 배경으로 각색해 무대에 올렸지만 ‘30년 전 한국 이야기’로 보기에는 저마다의 사연 곳곳에 일본 색이 묻어난다. 일본 B급 코미디 영화나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과장된 웃음 코드도 버겁다.

정의신 연극을 관통하는 주제인 ‘마이너리티’(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이 연극에선 크게 와 닿지 않는다. 도시화와 개발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마을 모습에 대한 통통배 선생의 실망은 마을을 대상화해 창작의 원천으로 삼은 지식인의 상실감일 뿐이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마을 사람들도 30년 전 그곳을 기억 속에 되살리고 싶을까. 극 중에서 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어른 삼식이는 생애 첫 영화를 함께 본 통통배 선생을 끝내 기억하지 못한다. 오는 24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판, 2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