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100개 닦으려다 1~2개를 깰 바에야, 차라리 10개만 닦고 말겠다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금융공기업 대표를 지낸 A씨는 얼마전 이렇게 말했다. 감사원의 감사 행태를 빗댄 말이다. 감사원의 ‘적발 위주’ 감사 때문에 공기업 임직원들이 소신껏 일하기보다 ‘보신 위주’로 흐른다는 지적이었다.

지난 14일 감사원이 발표한 ‘금융공기업 경영관리 실태’에서 산업은행은 사모펀드(PEF)로 5년간 2000억원의 수익을 내고도 잘못을 지적당했다. 산업은행의 KDB밸류2호펀드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기업 8곳에 3300억원을 분산 투자해 5300억원을 회수했다. 단순 계산하더라도 연평균 12%가 넘는, 양호한 수익률이다.

하지만 감사결과는 달랐다. 투자한 기업 중 한 곳에서 60억원의 손실이 났다는 이유로 담당자는 감사원으로부터 ‘주의 요구’ 처분을 받고 관련 임원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감사원 관계자는 “단순히 손실 때문이 아니라, 절차상 하자가 있어 조심하라는 차원에서 주의 요구라는 낮은 제재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감사원의 그동안 감사관행을 보면 어떻게든 흠집을 잡으려는 결과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관계자는 “감사원의 속성상 일단 감사를 하면 하자를 적발하려 든다”며 “이로 인해 전체 수익률이 아무리 좋더라도 개별 투자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징계를 받곤 한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연기금이나 금융공기업의 투자행태는 지극히 보수적이 된다. 아무리 높은 수익이 날 것 같은 투자라도 리스크가 조금만 있으면 투자의지를 접고 만다고 한다. “괜히 일을 벌였다가 잘못돼서 징계를 받느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에서다. 일부에서는 “연기금의 최고운용책임자(CIO)는 감사원”이라는 농담도 나돈다. 감사를 통해 투자대상을 사실상 정해주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감사원의 행태를 나무랄 수는 없다. 나랏돈이나 국민의 돈이 관리소홀로 엉뚱하게 새는 걸 막아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실적 채우기식 감사행태가 도(度)를 넘어섰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칫 금융공기업 직원들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국민의 돈을 불리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지 우려된다.

안대규 증권부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