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선박금융공사와 해양금융공사 설립방안에 대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4대 정책금융기관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정책금융기관의 기능과 상당히 겹칠 뿐 아니라 특정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으로 해석돼 무역분쟁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4개 기관은 전날 서울 여의도에서 정책금융기관 협의회를 열어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안에 관해 이같이 논의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마련해 각 기관의 소속 부처에 전달키로 했다.

선박·해양금융공사 설립안은 작년 7월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 등이 ‘한국선박금융공사법’을 발의해서 논의가 시작됐다.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부산지역 민심을 잡기 위해 이를 공약으로 채택했다. 지난 5일 김정훈 정무위원장(새누리당) 등이 ‘한국해양금융공사법’을 발의했다. 선박금융공사의 확대 버전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두 법안이 동시에 계류돼 있는데, 좀 더 광범위한 형태인 해양금융공사법으로 통합 심사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 공약인 만큼 정부 차원의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정책 추진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장가격보다 유리하게 자금을 지원하면 경쟁국가에서 이의를 제기해 분쟁이 빚어질 수 있는 만큼 해당 산업에 대한 지원 필요성에 대해 좀 더 납득할 만한 논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무위에 계류된 법안에 대해서는 관계부처들이 의견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4대 정책금융기관이 지난 13일 협의회에서 선박·해양금융공사에 관해 논의한 것도 각 부처(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지식경제부)가 의견을 제출할 때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이 우려하는 이유는 크게 △무역분쟁 가능성 △특정기관에 리스크 집중 △현재 기능과 중복 세 가지다. 이 회의에 참석한 한 정책금융기관 관계자는 “선박·해양금융공사는 특정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공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자칫하면 보조금 논란에 휩싸여 세계무역기구(WTO)의 제소 대상이 되는 등 무역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됐다”고 했다.

또 “조선·해운업을 지원하자는 것이 골자인데 대형 조선업체들은 이미 자금이 풍부하고, 중소형 업체들은 채권단 관리 체제로 운영되거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간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공사 설립의 실익이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이들 기관은 공사가 아닌 해운업에 초점을 맞춘 보증기금을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로 했다.

하지만 해운업계에서는 정책금융기관들이 ‘밥그릇’을 지키느라 반대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은 자신들의 선박금융 조직 등이 이관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는 것”이라며 “선박금융공사는 기존 기관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설립이 추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기관들의 전문성이 떨어져 선박금융이 원활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요즘처럼 불황이어서 선박 가격이 쌀 때 많은 발주가 이뤄져야 하는데 정책금융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은/서욱진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