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증권사가 6일 판매에 들어간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에 가입하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가입하는 데 필요한 소득확인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국세청 홈페이지 접속이 급증해 발급 기능이 마비될 정도였다. 초저금리 시대에 다른 상품보다 1%포인트 이상 높은 금리를 주는 재형저축에 가입하기 위해 서민층이 몰린 탓이다.

재형저축 첫날 '광풍'…소득증명서 발급 국세청 사이트 한꺼번에 20만명 몰려
이날 국세청에 따르면 소득확인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수십만명이 동시에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www.hometax.go.kr)에 접속한 탓에 발급 기능이 사실상 멈췄다. 국세청 관계자는 “하루 5만건가량 증명 발급 업무를 처리할 수 있으나 오전 9시부터 1시간 동안 20만명이 몰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발급이 불가능해지자 직접 세무서를 찾은 사람들로 전국 일선 세무서는 종일 북새통을 이뤘다. 민원인의 문의 전화로 세무서 담당 직원들은 업무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세무서 관계자는 “소득증명서를 발급받으려는 사람들에다 바쁜 직장인을 대신해 대리인 자격으로 온 은행 직원들까지 겹쳐 최소 1~2시간씩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혼란이 이어지자 국세청은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받아 이날 오후 2시께 부랴부랴 국세청이 발급하는 소득확인증명서 대신 근로소득만 있는 경우 회사에서 발급한 ‘근로소득원천징수 영수증’으로도 재형저축에 가입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꿨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산 처리 과정을 개선해 2~3일 안에 정상적인 발급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증명서 발급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못했음에도 이날 가입한 재형저축 계좌는 오후 4시 기준 15만4000여개에 달했다. 하루 동안 30만개 안팎의 계좌가 만들어졌을 것으로 은행권은 추정했다. 세무서를 통하거나 소득증명서를 미리 발급 받아 놓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저금리가 빚은 이상과열…은행, 막판 금리 올리고 직원에 목표 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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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별 가입실적(오후 4시 기준)은 연 4.6%로 최고금리를 제시한 기업은행이 4만계좌로 가장 많았다. 우리(3만8000) 국민(2만5000) 하나(2만4000) 농협은행(1만2000) 등의 순이다. 지방은행 중에선 경남은행이 5000여계좌를 유치해 돋보였다.

첫날부터 많은 가입자가 몰린 것은 초저금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모처럼 나온 고금리 상품인 데다 비과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서다. 지난 1월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 정기예금(1년 만기) 금리는 연 3.0%에 불과하지만 재형저축은 연 4.5~4.6%다. 이자소득세(14%) 감면까지 고려하면 실질금리는 연 5%를 넘는다. 2금융권 중 금리가 가장 높은 저축은행(연 3.54%)보다도 금리가 높다.

은행들은 상품 출시 하루 전인 지난 5일 경쟁적으로 금리를 끌어올렸다. 신한·하나·스탠다드차타드(SC) 등 일부 은행은 불과 금리 고시 한두 시간 전에 계획을 급하게 수정, 우대금리를 포함해 최고 연 4.5~4.6%의 고금리를 제시했다. 기업은행은 당초 연 4.5%로 약관 승인을 신청했다가 연 4.6%로 올려 최고 금리 자리를 꿰찼다.

광주은행은 출시 당일인 이날 오전 기본금리를 연 3.8%에서 연 4.2%로 올리기도 했다. 우대금리(0.4%)를 포함하면 최고 연 4.6%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출시 초반에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초기에 다수의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높은 금리를 제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형저축 상품 출시를 늦춘 산업은행이 얼마나 파격적인 금리를 제시할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산은은 온라인 상품 및 전산 시스템 개발 등을 이유로 재형저축 상품 출시를 오는 20일로 미뤄둔 상태다. 은행권에선 산은이 다이렉트 재형저축 상품을 내놓으면서 금리를 최고 연 4.7~4.8%까지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인의 남다른 특성으로 꼽히는 ‘쏠림 현상’도 이상 과열의 요인으로 꼽힌다. 모처럼 나온 정부 주도형 금융상품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고 ‘빨리 빨리’ 속성이 있는 소비자들이 하루라도 먼저 가입하려고 몰렸다는 진단이다. 초저금리 시대에 시장이 금리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보여준 셈이다.

은행들의 과당 경쟁도 과열을 초래한 요인이다. 은행들은 900만명으로 예상되는 고객 확보를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 국민 신한 우리 하나 등 주요 은행은 각각 120만~150만명 정도의 재형저축 고객을 유치한다는 전략을 세워놨다. 일부 은행은 출시 초기에 기선을 잡기 위해 이날 하루 직원당 10계좌 안팎의 할당 판매량까지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은행 입장에서는 고금리 경쟁으로 인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역마진’ 우려도 나온다. 현재 기준금리가 연 2.75%인 저금리 기조 속에서 연 4% 이상의 이자를 줄 경우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고 금리를 연 4.5%로 제시했을 경우 0.5%포인트 안팎의 역마진이 생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금융감독 당국은 재형저축을 놓고 불완전 판매나 꺾기(구속성 예금) 등의 불법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모니터링에 들어갔다. 지난 5일에는 각 은행 부행장들을 불러 과당 경쟁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김일규/조귀동/장창민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