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할아버지의 조국 배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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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Story - 한남대 입학한 쿠바 '애니깽' 한인4세 아자리아 임 씨
김구 선생 도운 임천택 증손녀
지구 반바퀴 돌아 유학 "한국기업서 일하는 게 꿈"
김구 선생 도운 임천택 증손녀
지구 반바퀴 돌아 유학 "한국기업서 일하는 게 꿈"
제94주년 3·1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였던 증조할아버지 조국을 찾아 지구 반대편인 쿠바에서 한국으로 공부하러 온 한인 4세가 있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는 3월4일 대전 한남대(총장 김형태) 린튼글로벌컬리지(Linton Global College)에 입학하는 아자리아 임(Azaria Lim·여·20). 지난 26일 입국한 임씨는 한남대 영어전용 특성화 단과대학인 린튼글로벌컬리지에서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전공할 계획이다.
그는 입학을 앞두고 한남대 선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대한민국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며 “앞으로 4년간 한국의 경제 문화 과학 등 놀라운 발전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증조부는 일제 강점기 무렵 조국을 떠나 멕시코를 거쳐 쿠바로 이주한 1세대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설립, 민족혼을 일깨우고 김구 선생을 도와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1903~1988·사진)이다.
임씨가 한국에 유학 오기까지는 정명기 한남대 중국통상학과 교수와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11년 쿠바를 방문한 정 교수가 당시 현지 교포인 제자로부터 애국지사 임 선생 가문 후손에 관한 얘기를 듣고 그의 유학을 돕게 된 것.
1년여의 준비 끝에 2013학년도 수시모집 외국인 전형으로 한남대에 합격한 임씨가 한국 땅을 밟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대한민국에 유학을 온다는 자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개월에 걸친 서류증명과 까다로운 심사 과정이 있었고, 다행히 양국 정부도 증조부의 여러 공적을 인정해 한국 유학을 허가했다. 임씨는 쿠바 한인협회 도움으로 기본적인 한글을 익힐 수 있었다.
졸업 후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요즘 쿠바에서는 가수 ‘싸이’ 열풍이 대단하다”며 “쿠바에 돌아가면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
■ 임천택 선생은
경기도 광주 출신의 임천택 선생은 1905년 두 살 때 홀어머니 품에 안겨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해 멕시코 유카탄 반도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갔다가 18세 되던 해 쿠바로 재이주했다. 임 선생은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창설,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또 1923년 독립선언 시위를 주도하고 진성국어학교를 설립하는 등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며 민족교육 활동을 전개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오는 3월4일 대전 한남대(총장 김형태) 린튼글로벌컬리지(Linton Global College)에 입학하는 아자리아 임(Azaria Lim·여·20). 지난 26일 입국한 임씨는 한남대 영어전용 특성화 단과대학인 린튼글로벌컬리지에서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전공할 계획이다.
그는 입학을 앞두고 한남대 선배들과 만난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대한민국 땅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며 “앞으로 4년간 한국의 경제 문화 과학 등 놀라운 발전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증조부는 일제 강점기 무렵 조국을 떠나 멕시코를 거쳐 쿠바로 이주한 1세대로 이역만리 타국에서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설립, 민족혼을 일깨우고 김구 선생을 도와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운동가 임천택 선생(1903~1988·사진)이다.
임씨가 한국에 유학 오기까지는 정명기 한남대 중국통상학과 교수와의 만남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2011년 쿠바를 방문한 정 교수가 당시 현지 교포인 제자로부터 애국지사 임 선생 가문 후손에 관한 얘기를 듣고 그의 유학을 돕게 된 것.
1년여의 준비 끝에 2013학년도 수시모집 외국인 전형으로 한남대에 합격한 임씨가 한국 땅을 밟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도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대한민국에 유학을 온다는 자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개월에 걸친 서류증명과 까다로운 심사 과정이 있었고, 다행히 양국 정부도 증조부의 여러 공적을 인정해 한국 유학을 허가했다. 임씨는 쿠바 한인협회 도움으로 기본적인 한글을 익힐 수 있었다.
졸업 후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요즘 쿠바에서는 가수 ‘싸이’ 열풍이 대단하다”며 “쿠바에 돌아가면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전=임호범 기자 lhb@hankyung.com
■ 임천택 선생은
경기도 광주 출신의 임천택 선생은 1905년 두 살 때 홀어머니 품에 안겨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의해 멕시코 유카탄 반도 ‘애니깽 농장’으로 팔려갔다가 18세 되던 해 쿠바로 재이주했다. 임 선생은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인국민회 쿠바지방회를 창설,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또 1923년 독립선언 시위를 주도하고 진성국어학교를 설립하는 등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며 민족교육 활동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