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업무였던 노동분쟁 사건은 요즘 한 달에 10건도 수임하기 어려워요. 수임료도 20년 전과 비슷해요. 건당 100만~150만원을 받아 사무실 임대료 내기도 힘듭니다.”(국내 5위권 노무법인 소속 A노무사)

“노동분쟁 사건만 다루면 망한다고 보면 됩니다. 최근 억원대 수임료를 받고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해 사쪽에 붙어 불법 조언과 교육을 해주는 법인이 생겨나는 것도 이 어려운 여건에서 다 살아남기 위해서죠.”(장혜진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장)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노동 분쟁 사건이 늘어나면서 한때 호황을 누렸던 공인노무사들이 급변하는 노동환경 탓에 최근 들어 혹한기를 맞고 있다. 무엇보다 2년 이하의 단기 계약직 노동자가 증가하면서 해직 노동자 복직 등 노동분쟁 사건이 현저히 줄고 있다. 반면 공인 노무사 자격증 취득자는 매년 250명가량 늘고 있다. 최근 7년 새 노무사 수는 두 배로 늘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사건 수임료는 20년 전과 비슷해 사무실 임대료 내기조차 버거운 노무법인들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숫자가 증가한 변호사들이 노무사의 영역이었던 노동사건 수임에 나서면서 노무사들이 설 땅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최근 건당 수억원씩 받고 노조 설립을 막게끔 불법 자문을 해주는 노무법인이 나오는가 하면 반대 쪽에서는 한 달에 몇 만원을 받고 중소기업 임금 정산 업무를 대행해주는 ‘생계형’ 노무법인도 생겨나고 있다. 또 사무실 임대 비용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무사들이 이합집산하는 현상도 뚜렷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제2의 변호사’로 불리며 미래 유망직종으로 각광받던 노무사 업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일감은 줄고 노무사는 7년 새 2배

정부는 1985년 노무사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1980~1990년대엔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 등 각종 사건을 대리하는 노동 관련 법률 사무와 심판 대리 업무를 수행하는 일감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노동 분쟁 사건은 완만하게 느는 반면 노무사 수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변호사들도 자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노동 사건을 수임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22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공인노무사 수는 2008년 1291명에서 지난해 2010명으로 56% 늘었지만 노동 분쟁 건수는 2008년 1만1158건에서 2011년(2012년은 미집계) 1만2681건으로 1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와 함께 노동 분쟁 사건에 휘말린 노동자들이 수임료를 아끼기 위해 국선 노무사를 이용하고, 인터넷에서 법률 정보를 검색해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고 있어 노무사의 일감은 더욱 감소했다. 2008년 2월부터 시행된 국선 노무사는 2011년 2248건을 수임, 전체 노동 분쟁 건수의 18%를 맡았다.

불황이 길어지자 일부 노무법인은 억원대의 고액 수임료를 받고 회사 측에 불법 자문을 하기도 한다. 노무 시장의 생태계 변화에 따른 생존책인 셈이다. 일부 노무법인들이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무노조 전략을 돕는 대가로 수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정황이 드러나 지난 7일 고용부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했다.

사용자 측과 계약을 맺고 노조활동에 개입하거나 사측에 유리한 노조 설립 등을 돕는 것은 불법이다. 부당노동행위로 노동조합법 81조 위반이면서 ‘법령에 위반되는 행위에 관한 지도·상담을 하면 안 된다’는 공인노무사법 13조도 위반한 것이 된다.

불법 ‘컨설팅 노무사(법인)’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보다 수수료 때문. 권영국 변호사는 “노무업계에서 한 건에 3000만원 이상의 사건은 거의 없지만 노조 설립 저지와 같은 컨설팅은 수임료가 쉽게 억원대를 오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모 의원에 따르면 창조컨설팅은 발레오전장 자문 대가로 1억2500만~2억2500만원, 상신브레이크에선 4억8600~5억8600만원, 유성기업에선 6억1200만~7억7200만원가량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마트 자문을 했던 일부 노무법인의 자문료도 2억원에 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 중견 노무사는 “최근 들어 사 쪽에 불리한 증거를 남기지 않거나 문제의 소지를 없애는 예방적 활동을 하는 ‘컨설팅’이 수임료가 높아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임금 정산해주고 1만원…다양한 생존전략 모색

고액 수임료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불법 컨설팅에 나서는 일부 노무법인 외에 혹한기를 견디는 대다수 노무법인의 생존 노력은 눈물겹다. 노무사 10여명이 일하는 서울 강남의 한 노무법인은 최근 정보기술(IT)업체와 손잡고 기업 노무관리 프로그램을 업계 최초로 개발, 중소기업을 찾아 판매에 나섰다. 주 업무였던 노동분쟁 사건을 한 달에 10건도 수임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지자 새로운 사업을 찾아나선 것이다.

이 노무법인은 또 중소기업 인사팀의 임금정산 업무를 대신해주고 근로자 1인당 한 달에 1만원씩 받고 있다. 이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업무다. 이 업무는 20인 미만 사업장이 대부분이어서 큰 돈은 받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고정 수익을 내지 못하면 사무실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노무법인 관계자는 “노동 사건 수임료가 100만~150만원 수준으로 20년 전과 비슷해 이것만으론 사무실 임대 비용을 대기도 힘들다”며 “노무업계 상황이 어렵다 보니 불법 변종 업체도 생겨난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노무법인들은 기업의 근로계약서 등을 대신 작성해주는 대가로 자문료를 받는다. 이 또한 ‘작은 일거리’도 마다하지 않는 업계의 현실이다. 노무법인 유앤 관계자는 “취약 계층을 고용하면 정부가 일정 부분을 지원해주는데, 이런 제도를 몰라 지원금을 못 받는 회사에 자문해 주고 지원금의 10%를 수수료로 받는 업무가 새로 생기는 등 노무사의 일이 점점 세분화, 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법인끼리 합쳐 몸집을 불리는 곳도 있다. 변호사들이 노동사건 시장으로 들어오자 기존의 영업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문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 2010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법무법인끼리 기업형 통합이 이뤄져 ‘노무법인 유앤’이 설립됐다. 공인노무사 수만 50여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다. 지난해 기준 노무사 수는 2010명인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편법·기형적 노무법인은 정부 관리 절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무업계의 업종 다변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편법·기형적 노무 컨설팅은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 변호사는 “최근 대형 노무법인이 많이 생겨나고 이들이 노조 와해나 약화를 위한 활동 등 통상적인 노무사의 업무 영역을 넘는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감독과 제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영기 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고용부에서도 공인노무사 관련 업무자가 2명 정도에 불과해 노무사들에 대한 감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 등 다른 많은 자격사는 민간 협회가 자체 징계권을 갖고 있는데 노무사도 업계 현실을 가장 잘 아는 노무사회가 1차적인 규제 권한을 가져야 자율개선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노무사들이 공인노무사회에 업무 신고를 하고 정부는 필요할 때 그 자료를 바탕으로 조치하는 ‘노무사 사건 수임 신고제’ 도입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노무사나 노무법인이 맡은 사건은 기록·관리되지 않아 불법을 저지른 노무사가 있어도 관리가 쉽지 않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무사와 노무법인에 대한 최근 점검 결과 일부 노무사들이 부당노동행위를 유도하는 등의 위법 사례가 드러났다”며 “사건 수임 신고제도 업계의 발전을 유도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김우섭/하헌형/양병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