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품 텐트와 평범한 텐트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있다. ‘DAC’ 텐트폴을 사용하는지 여부다. 텐트폴은 텐트를 지지하는 뼈대로, 건축물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한다. 세계 3대 텐트 브랜드로 유명한 스웨덴 ‘힐레베르그’ 미국 ‘블랙다이아몬드’ 캐나다 ‘인테그랄디자인’은 모두 DAC 마크가 새겨진 폴을 쓴다.

이 DAC 폴을 만드는 곳은 인천시 가좌동에 있는 동아알루미늄이다. 라제건 동아알루미늄 사장(58)은 20여년간 텐트폴 한우물만 팠다. 그는 “남이 흉내내지 못하는 명품 알루미늄 소재로 세계 1등이 되는 게 단순히 매출만 끌어올리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어텍스’(멤브레인 소재를 써 방수 및 방풍성을 높인 직물 소재)나 ‘YKK’(고급 의류에 쓰이는 지퍼)처럼 DAC는 레저전문가 사이에선 명품 텐트폴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통한다. 현재 170억원 규모 세계 고급 텐트폴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이 분야 ‘히든 챔피언’(규모는 작지만 해당 분야에서 세계 1, 2위를 차지하는 강소기업)이다.

1988년 동아알루미늄을 창업한 라 사장은 처음엔 야구방망이나 화살촉의 기초소재인 알루미늄 튜브를 만들었다. 그는 소재·부품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 있는 파워 소재를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알루미늄 텐트폴 분야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텐트폴을 차세대 소재 분야로 본 그는 1997년 ‘페더라이트’라는 새로운 알루미늄 폴 소재를 개발했다. 레저 수요가 커질 것이란 시장 예측과 경량화라는 시대 트렌드를 읽은 결과다.

페더라이트는 강도는 종전 제품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존 텐트폴보다 무게를 18% 줄인 게 특징이다. 그는 이 소재에 ‘DAC(Donga Aluminum Corporation)’라는 브랜드를 달았다. 특별한 해외 영업활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세계 3대 텐트업체를 비롯해 K2, 노스페이스, 블랙야크, 몽벨 등 유명 텐트 브랜드업체들이 소문을 듣고 DAC 폴을 공급받기 위해 회사를 먼저 찾아왔다. 라 사장은 “텐트업체 대표들이 ‘다른 건 몰라도 댁(DAC)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며 흐뭇해했다. 출시 3년 만인 2000년 라 사장은 당시 세계 고급 텐트폴 1위 업체였던 미국 이스턴을 시장에서 몰아냈다. 회사는 지난해 매출 200억원 가운데 75%를 DAC폴 하나로 거뒀다.

라 사장은 2009년부터 알루미늄 텐트폴 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해 4월 조립과 휴대가 간편한 레저용 간이의자 ‘체어 원’과 ‘트레킹 폴(산악용 지팡이)’을 만들어 ‘헬리녹스(Helinox)’라는 브랜드로 완제품 시장에 진출했다.

이 가운데 라 사장의 장남인 라영환 부장(29)이 직접 디자인한 ‘체어 원’은 출시 첫해 50억원을 벌어들인 효자 상품. 지난 6일 세계 레저용품 업체들이 모이는 독일 레저전시회 ‘뮌헨 ISPO 2013’에서 디자인상까지 수상했다. 라 사장은 “DAC에 대한 높은 인지도 덕분에 헬리녹스 제품까지 덩달아 잘 팔리고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레저용품을 개발해 헬리녹스를 DAC에 버금가는 명품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