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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 특별기획] 섣부른 증세는 경기에 찬물 끼얹어…세율 인상은 '최후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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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장기불황에서 배운다 (2부) 박근혜 정부의 과제
    (3) 증세는 신중히 하라
    1996년 10월20일 제41회 일본 중의원 선거.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이끌던 자유민주당이 과반에 가까운 239개 의석을 확보했다. 9월27일 중의원을 해산한 지 한 달 만이었다. 하시모토 총리는 당선 의원들의 명판(名板)에 꽃을 꽂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자민당은 1993년 7월 총선에서 패해 정권을 잃은 지 3년3개월 만에 단독으로 정권을 되찾았다.

    일본 민심이 ‘안정 속의 개혁’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거의 최대 쟁점은 소비세율 인상과 행정개혁. 증세에 적극적이었던 자민당의 승리는 이듬해 4월 소비세 인상으로 이어졌다. 하시모토 내각은 소비세율을 종전 3%에서 5%로 올리면서 적자국채 발행 규모를 대폭 삭감하는 등 재정지출을 줄였다. 그러나 섣부른 증세와 재정지출 삭감은 잠시 회복세를 보이던 일본 경제에 찬물을 끼얹어 경기가 다시 고꾸라졌다.

    한국도 2년 연속 2%대 저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 논란이 거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세율 인상이 아닌 비과세·감면 축소와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복지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선 복지공약을 실천하려면 앞으로 5년간 135조원이 필요한 만큼 세율 인상을 통한 증세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전문가들은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라며 경기상황을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증세가 오히려 세수 줄일 수도

    일본 정부의 소비세 인상은 경제상황에 대한 오판에서 비롯됐다. 1996년 일본 경제는 전년보다 2.6% 성장했다. 거품 붕괴 직전이었던 1991년(3.4%)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이었다. 소비와 투자가 살아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소비세 인상을 앞둔 가수요 때문이었다. 내수가 국내총생산(GDP)의 90%(정부지출 포함)에 달하는 상황에서 세율 인상은 일본 경제에 치명타가 됐다.

    소비세 인상은 가계의 가처분소득 감소→소비 위축→내수시장 축소→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아시아 외환위기까지 겹쳐 1998년(-2%)과 1999년(-0.2%) 일본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했다. 산요증권과 야마이치증권, 홋카이도타쿠쇼쿠은행은 문을 닫았다.

    장기불황으로 이어지면서 세수(稅收) 증대를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도 수포로 돌아갔다. 소비세 인상과 특별감세 폐지, 진료비 부담 인상 등으로 연간 9조엔을 더 벌어들이려고 했던 일본 정부는 이후 4년간 경기부양을 위해 99조엔을 쏟아부어야 했다. 세입도 기대에 못 미쳤다. 일본 정부의 연간 세입은 1997년 기록했던 54조엔을 이후 한 번도 넘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2007년 세입은 51조엔으로 10년 전보다 3조엔 가까이 감소했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디플레이션 극복이 없는 증세는 해도 효과가 없고, 오히려 세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7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이 이어진 한국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윤창현 금융연구원장은 “미국에서도 대공황 이후 좋아지던 경제가 1937년 루스벨트 정부의 세율 인상 이후 다시 나빠진 적이 있다”며 섣부른 증세를 경계했다.

    ◆“징검다리 복지세 도입 검토하자”

    전문가들은 세금 인상에 앞서 최대한 세원(稅源)을 확대하고, 세출 구조조정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박 당선인은 예산 절감과 세출 구조조정(82조원), 세제 개편(53조원) 등을 통해 5년간 총 135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세출 구조조정만 봐도 연간 예산에서 줄일 수 있는 재량지출의 10%가량을 삭감해야 하는 등 현실성이 떨어진다. 어쩔 수 없이 증세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그렇다면 세원을 확대하고 세율 인상의 경제적 영향을 따져 시기와 세율 등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홍균 서강대 교수는 “세원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먼저 자본이득과세나 담뱃세 인상 등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목적세로 복지세를 도입하자는 제안도 있다.

    안병우 한반도발전연구원 이사장(전 예산청장)은 “1년에 10조원 정도를 조달할 수 있는 복지세를 10년간 한시적으로 신설하자”고 말했다. 이 기간에 복지세로 복지재원을 충당하면서 치밀한 분석과 국민 의견 수렴을 거쳐 총체적으로 세제를 뜯어고치자는 주장이다.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 수준의 세제 개혁을 하자는 얘기다. 구 수석연구원도 “복지 용도로 쓴다는 목적이 분명하면 국민도 복지세 신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인세 인상은 위험

    복지 지출도 국가 생산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김 교수는 “무상보육은 실제 효과보다는 폐해가 더 크다”며 “무상보육을 할 바에야 저소득층이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교육 관련 투자를 늘리면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면서 잠재성장률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간접자본(SOC) 지출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일본은 1990년대 장기불황 과정에서 도로 다리 건설 등 SOC에 돈을 퍼부었다”며 “하지만 지방 건설업체를 먹여 살렸을 뿐 경제 회복에는 큰 도움이 안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처럼 SOC에 과도하게 돈을 쓸 게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나 과학기술 분야 등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인세율 인상은 최후 수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염명배 한국재정학회장(충남대 교수)은 “글로벌 추세는 소득세는 올리되 법인세는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원장도 “법인세를 지나치게 올리면 기업들이 해외로 떠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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