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 '中企 투어' 바쁘다 바뻐
요즘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설 이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중소기업 고객사를 돌아보기 위한 스케줄을 짜느라 분주하다. 웬만한 일정은 뒤로 미루고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간담회 날짜를 먼저 잡으라고 비서실에 지시했다.

15일부터 이달 말까지 부산·대구·광주 지역 등 1박2일 일정을 촘촘하게 짜놨다. 다음달에도 추가 일정을 잡기로 했다. 서 행장은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고객사 CEO들과의 잇따른 간담회를 통해 애로사항을 듣고 지원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은행장들이 잇달아 중소기업 현장으로 달려 나가고 있다. 중기 대출 확대와 금리 인하 등의 지원 방안을 내놓은 데 이어 직접 몸으로 뛰어 체감경기를 파악해 추가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순우 우리은행장은 중소기업 방문 일정을 아예 프로그램화한 ‘로드마케팅(road marketing)’을 준비 중이다. 오는 18일 경기 안산 반월공단을 시작으로 120여개의 중소기업을 방문한다. 대상 기업은 대부분 제조업체다. 이 행장은 “가만히 앉아서 중소기업에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없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지주 회장이 지원사격에 나선 경우도 있다.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은 중기 지원 활성화를 위해 지난 4일 ‘KB 히든 스타 500’ 세미나를 열고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토털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금융회사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KB 히든 스타 500은 국민은행이 잠재력 높은 우량 중소·중견기업을 발굴해 지원하고 있는 제도다. 이와 별도로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14일부터 수도권 중소기업체들을 시작으로 다음달까지 전국 주요 산업단지를 돌아본다. 민 행장은 “3월 중에 중소기업 금융 지원안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외환은행과 복수로 거래하는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영인들을 초청해 애로 및 건의사항을 듣는 ‘경영인 초청 콘퍼런스’를 진행한다. 신충식 농협은행장은 4일 경기 지역 중소기업을 잇달아 방문해 자금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시중은행들은 이미 중기 대출 규모도 크게 늘리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개 주요 시중은행의 중기 대출은 205조9073억원으로 전달인 지난해 12월 말보다 8800억원 이상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과 가계대출은 모두 줄어들었다.

은행들의 이 같은 중기 지원책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코드 맞추기용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무리한 중기 대출이 지속될 경우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가계대출 연착륙이나 수익성 확보 등 산적한 현안을 제쳐두고 중기 대출에만 몰두할 경우 나중에 부실채권 증가로 인해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27%에 달한다. 대기업 및 가계대출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은행 CEO들이 새 정부 정책방향과 사회공헌만을 염두에 두고 경영하게 되면 미래 수익 기반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장창민/박신영/김일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