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은행 OOO과장입니다. 마이너스 대출 가능합니다.’

실직자 A씨는 지난해 이 같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고 대출 상담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금융기관에서 전화가 갈 테니 자세한 상담을 받아보라’고 안내했고, 곧이어 ‘1588-××××’ 번호로 전화가 왔다. “OO은행입니다.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과 재직증명서를 보내주시면 대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직업이 없는 A씨는 서류를 마련할 수 없었고 이전에 전화가 걸려온 상담원에게 이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자 상담원은 ‘200만원의 수수료를 입금하면 필요한 서류는 알아서 전부 마련해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A씨는 상담원이 안내하는 계좌로 200만원을 입금했지만 이후 상담원은 연락이 두절됐다. 대출 상담을 빙자한 조직적 ‘보이스피싱(전화통신금융사기)’이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김석재)는 5일 이같이 대출 알선을 빙자한 전화 사기로 개인들로부터 3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총 60명을 입건, 이 중 50여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최근 수년간 보이스피싱 범죄 행위가 적발된 사례는 많았지만 ‘마케팅 지침서’까지 마련해 6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사례가 그대로 드러난 것은 처음이다.

○전화·통장·대포폰 등 4개팀의 ‘활약’

이들 조직은 각자 역할을 나눠 팀별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구조였다. △문자메시지와 전화로 피해자를 유인하는 팀 △범행에 쓸 대포통장·현금카드를 만드는 팀 △대포폰을 공급하는 팀 △현금 인출을 담당하는 팀 등이었다.

전화금융 사기 조직은 ‘문자발송팀’ ‘전화상담팀’ ‘금융기관 대출직원 사칭팀’ 등으로 나눠 피해자들로부터 대출 알선 등의 명목으로 돈을 가로챘다. 특히 대포폰 공급조직 운영자는 수사기관이 해당 휴대폰을 조회할 경우 조직에 수사 사실을 통보하고 대포폰을 곧바로 해지해 추적이 곤란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렇게 편취한 돈은 현금인출조직이 각 범행 가담자들에게 분배했다. 이들은 ‘마케팅 지침서’까지 만들어 조직원을 교육시키는 등 치밀한 도제식 사전 교육을 통해 범행수법을 전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 중 대포통장을 공급한 이모씨(45)와 현금 인출책을 맡은 김모씨(56) 등 10명은 구속하고 달아난 10명은 기소중지했다.

○국내 4~5개 조직 더 활동 중

검찰은 지난해 5월 보이스피싱 운영자 등 7명을 구속 기소한 이후 10개월간 관련 수사를 계속해왔다. 하부 조직 간에도 따로 사무실을 유지하고 위치도 서로 모르게 할 만큼 극도의 보안을 유지한 데다 조직원 대부분이 가명을 사용한 탓에 조직 구성을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게 검찰 측 설명이다.

검찰은 해외로 도피한 공범 검거에 나서는 한편 다른 전문적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을 계속 단속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비슷한 패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국내 조직이 4~5곳 정도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지속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