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투자를 위해 계열사 자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2003년 2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된 지 10년 만이다.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은 공범 가담 사실이 인정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됐다. 재계는 작년 8월 김승연 한화 회장에 이어 최 회장까지 법정구속되자 충격에 휩싸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이원범)는 31일 SK 계열사들의 펀드 출자용 선지급금 465억원을 사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를 유죄로 인정해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계열사 임원에 대한 보너스를 돌려받아 비자금 139억5000만원을 조성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태원 회장은 SK 계열사에 지시해 1000억원대 펀드 결성을 위한 선지급금을 베넥스인베스트먼트에 송금하게 했다가 선물 투자 등의 용도로 유출했다”고 유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자신이 지배하는 계열사를 범행의 수단으로 삼아 기업을 사유화한 최 회장은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1970년대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선도해온 SK그룹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려 참으로 심대한 실망감을 안겨줬다”고 판결했다.

최 회장은 2008년 10월 말 SK텔레콤, SK C&C 등 2개 계열사에서 선지급금 명목으로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작년 1월 불구속 기소됐다.

최 회장 측은 선고 직후 “무죄 입증을 위해 성심껏 소명했으나 인정되지 않아 안타깝다”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주요 그룹은 경제민주화 여파가 생각보다 크다는 점에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법원이 최태원 회장을 법정구속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전경련은 “최 회장이 기업 경영과 사회적 기업 활성화 등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는 점을 고려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반기업 정서가 더욱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정소람/이태명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