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없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31일 최태원 SK 회장이 법정 구속되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주요 그룹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작년 8월 김승연 한화 회장이 법정 구속된 데 이어 최 회장까지 실형을 선고받자 재계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A그룹 관계자는 “재계 순위 10위 그룹과 3위 그룹 총수가 5개월 사이에 구속됐는데 더 이상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메가톤급 충격”(B그룹 관계자)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일각에선 “도주할 우려도 없는데 법정 구속하는 건 과도한 법 집행”이란 불만 섞인 반응도 있었다.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들도 일제히 유감을 표명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대내외 경제환경이 어렵고 수출·내수 회복이 절실한 상황에서 (최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게 돼 안타깝다”며 “SK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 활동과 지배구조 개선작업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입장을 냈다.

재계는 김 회장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경제민주화 바람이 실형 선고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에 미치는 파장과 국민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던 이전과는 달리 반(反)대기업 정서와 맞물려 대기업 총수의 구속이 이어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속내다.

이날 재판부가 밝힌 최 회장의 양형 이유만 봐도 그렇다. 재판부는 그의 양형 판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도 ‘대기업의 무리한 사업 확장과 과도한 이윤 추구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국민 신뢰를 저버리고 대기업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기업 최고경영자로서 누구보다 합리성과 투명성을 갖춰야 한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대기업 불신’ ‘국민 신뢰’ ‘기업 투명성’ 등은 작년 정치권에서 경제민주화 논란이 벌어지면서 쏟아져 나온 표현과 대동소이하다. 재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설명한 양형 이유를 보면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대기업들에 일종의 법적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재계는 최 회장의 법정 구속이 다른 기업 재판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다른 그룹 총수들도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룹 총수가 재판을 받고 있는 기업은 한화 LIG 금호석유화학 오리온 등이다. 김 회장은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3심도 진행 중이다. 구자원 LIG 회장과 구본상 부회장의 재판도 남아 있다.

재계 일각에선 새 정부 들어서도 경제민주화 바람이 잦아들 가능성이 작다는 점에서 경영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준법 경영과 윤리 경영에 주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엄격한 준법·윤리 경영을 요구받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태명/정소람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