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에서 남편이 아내를 잃어버렸을 때 다시 만날 장소를 정해두지 않았다면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전투기의 고장으로 낙하산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온 두 조종사는 미리 약속한 장소 없이도 만날 수 있을까.

200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 메릴랜드대 교수는 《갈등의 전략》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거나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서로의 예측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공통의 기대치를 수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인 행동은 문화적·심리적·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아내를 잃어버린 남편은 “내가 마누라라면 어떻게 할까” “내가 마누라라면 내가 어떻게 하리라고 생각할까”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예측을 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은 상대가 확신하는 곳으로 예측을 수렴해가면서 서로 만날 확률을 높인다.

셸링 교수는 갈등과 협상에 관한 게임이론의 대가다. 그는 이 책에서 핵전쟁 억지와 군축과 같은 문제부터 파업 협상, 강력범죄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회현상을 게임이론으로 풀이한다. 복잡한 수학이론으로 설명하는 다른 게임이론과는 달리 현실적인 문제를 예로 들며 분석하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게임이론은 게임 참여자들의 대립관계에만 치중하는 ‘제로섬 게임’과는 다르다. 그는 갈등과 상호의존성이 혼합된 협상게임을 주로 얘기한다. 현실 속에서 상대와의 관계에는 상호의존과 갈등, 협력과 경쟁이 혼재돼 있어서다. 보행자가 자동차 운전자를 위협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위협하는 것은 대칭적인 제로섬 게임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기는 협상의 태도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보자. 그는 미국 정부가 관세 인하 등 국제 협상에 나서는 것을 예로 든다. 행정부에 최고의 중재안을 가지고 마음대로 협상할 수 있는 권한을 일임하면 어떤 입장을 제대로 고집해보지도 못한 채 주요 이슈를 양보해버린다. 협상을 결렬시키는 것보다 양보하는 편이 미국 행정부에 득이 된다는 것을 상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정부가 법적으로 제한된 권한 아래에서 협상에 임하고, 의회가 승인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이 명확하다면 행정부는 협상 대상국에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보여줄 수 있다. 구속력을 가진 상황을 상대방에게 분명히 알릴 수 있다면 자신의 최초 입장을 최종 입장으로 확실하게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서로의 득이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사람의 득이 많다고 다른 사람의 득이 적어지지 않는다. 갈등 양상에서도 서로 유리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는 공통의 관심사가 늘 존재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합리적인 행동을 통해 갈등을 어떻게 타협, 협상으로 풀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저자가 말하는 대립과 협력의 상호의존성은 세대·계층·집단 간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상생과 통합을 끌어내는 해법에 대한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