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공약을 둘러싸고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공약 실행이 과연 가능한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한 공공정책 전문가가 언론 인터뷰에서 비유했던 대로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자고 하는 식이니 그렇다. 유머대로 냉장고 문을 열고, 코끼리를 넣은 다음, 문을 닫는 간단한 세 단계 풀이로 넘어갈 수도 없으니 새 정부는 시작부터 막막하게 생겼다.

그런 점에서 보면 새누리당에서 공약 우선순위라도 만들어 교통정리를 하자는 말을 꺼냈던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임기 5년 동안 20개 분야 201개 공약을 다 지키고, 지출 삭감과 지하경제 세수 확대로 연간 27조원씩 총 134조원의 재원을 조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물론 원칙으로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말이 백번 옳다. 선거 때 약속하고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언급 그대로다. 이제 와서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면 앞으로 하는 약속도 믿지 못한다.

공짜 공약은 곧 국가부채

그렇지만 지킬 공약과 안 지켜도 될 공약이 따로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박 캠프에서 활약했던 한 인사는 실행하지 않을 공약, 야당에 쫓겨 억지로 만들었던 공약이 있었다고 실토하는 정도다. 진짜 공약과 가짜 공약이 따로 있었다는 얘기다. 군 복무기간 단축이나, 지방 공약들에 대한 재원 추산이 없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여기에 말바꾸기도 벌어지는 상황이다. 기초연금만 해도 그렇다. 소요자금을 감당할 수 없어 국민연금에서 30% 정도를 빼서 쓰자고 하더니, 이제는 65세 이상 고령자 모두에게 20만원을 주자는 게 아니었다고 발을 빼는 양상이다. 별도 연금을 받는 군인 공무원 교사와 국민연금을 많이 받는 사람을 빼자는 이런저런 수습대책들도 나온다.

이미 올해 복지 예산이 100조원을 넘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한국이다. 특히 고령화 속도는 세계적인 노인국가인 일본을 앞서는 정도다. 이런 추세라면 노인복지만 해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할지 모른다. 박 당선인이 증세는 없다고 강조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가 공짜일 리 없다. 세금이 아니라면 국채를 찍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국가부채 확대다. 건전재정포럼의 최종찬 전 장관 말마따나 연간 국가부채 한도제라도 둬야 할 판이다.

진짜 버려야 할 것

소위 경제민주화 공약들도 그렇다. 돌아보면 시장과 대기업을 공격하는 구호가 요란했던 선거 분위기를 타고 위헌 소지까지 있는 공약들이 대거 만들어졌다. 일감몰아주기와 관련한 기업인 형량 강화,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 공약이 어떤 뜻을 갖고 있고,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아니 많은 사람들에겐 관심 자체가 없다. 일감을 몰아준 기업에 10배의 손해배상액을 물리자는 일부 인수위원들의 발상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반대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도 그래서다. 성장과 고용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복지를 확대하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거짓말이 판쳤던 뒤끝이다. 가짜 공약을 골라낸다면 이런 것들이 최우선돼야 할 것이다.

공약을 정책화하는 로드맵은 손도 대지 못한 상황이다. 인수위원회가 아니라 새 정부가 로드맵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메인게임은 이제부터라는 얘기다. 먼저 진짜 공약과 가짜 공약부터 가려보길 바란다. 박 당선인 지지자 중에서 공약이 좋아 찍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헤아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문희수 논설위원 m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