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마니아들이 들떠 있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주변에 많은 이들이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자도 그 중 하나다. 다소 놀라운 건 이게 현대자동차 때문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2008년 국내 첫 후륜구동(뒷바퀴굴림) 스포츠카인 제네시스 쿠페가 출시된 후 5년 만에 현대차로부터 느껴보는 흥미로운 감정이다.

현대차가 내년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WRC는 포뮬러원(F1)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동차 경주 중 하나다. 현대차가 WRC에 그냥 참가하는 게 아니다. 총력을 다할 방침이다. 레이싱팀을 이끌 총 책임자로 프랑스의 미쉘 난단을 임명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난단은 2000년대 중반까지 도요타와 푸조 랠리팀 테크니컬 디렉터를 거쳐 스바루 랠리팀에서 일한 이 부문 전문가다. 특히 푸조에서 일하는 동안 총 51회의 우승을 기록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파리모터쇼에서 처음 공개한 ‘i20 랠리카’ 개발을 마무리 짓는 한편 레이싱에 투입할 드라이버를 구하는 중이다. 올해는 WRC 대회 분위기에 적응하고 새 랠리카의 오류를 보완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현대 모터스포츠를 만들었다.

현대차가 WRC 대회 참가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유럽 자동차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WRC에서의 활동을 통한 인지도 높이기가 필수적이다. 아직 유럽에선 현대차의 인지도가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WRC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브랜드 인지도 향상 효과를 누릴 것이다. 이 대회에서 잔뼈가 굵은 푸조, 르노, 시트로앵, 폭스바겐 등이 좋은 예다. 특히 시트로앵은 WRC에서 세바스티앙 로브라는 걸출한 드라이버를 통해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해왔으며 이는 DS3, DS4와 같은 모델들의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이유는 기술 및 다양한 데이터 확보에 있다. 장기적으로 랠리에 참가하면서 기술을 개발하고 연마해 고성능 차량 개발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빅3’ 브랜드들이 F1과 WRC,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등 다양한 대회에 참가하면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축적했으며 이를 통해 렉서스 LF-A와 혼다 NSX 등 슈퍼카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의 i20 랠리카가 배기량 1600㏄로 작지만 최고출력은 300마력으로 강한 만큼 차체 강성이나 서스펜션 세팅 등에서 고급 정보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랠리카는 4륜 구동이기 때문에 이 부문에 대한 노하우 축적 및 기술적 진보도 상당히 빠른 시일 내에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둘 중 개인적으로 후자에 관심이 간다. 차체 강성이나 하체는 그동안 현대차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만큼 이번 WRC 참가를 통해 이전보다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하나 더 있다. 현대차가 ‘드라이버들의 지옥’으로 불리는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 바로 옆에 테스트센터를 짓는다는 점이다. 이 건물은 서킷과 바로 연결된다. 뉘르부르크링은 F1 경기가 열리는 곳이자 독일 모터스포츠의 성지다. 이곳에 들어설 현대차의 테스트센터는 독일 뤼셀하임의 현대차 유럽연구소가 향후 유럽시장에 내놓을 고성능 신차를 개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그동안 현대차는 자동차 업계 안팎에서 ‘차를 많이 팔아 돈은 많이 벌었지만 모터스포츠 참가에는 인색한 회사’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지만 2003년 이후 10년 만의 WRC 복귀와 독일 뉘르부르크링 테스트센터 건립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앞으로 현대차도 마니아들이 갖고 싶은 드림카를 내놓을 수 있을까. 일단은 응원이 먼저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