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전철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지바현 모바라시. 인구 9만3000명인 이 도시에서 작년에만 1500여명의 실직자가 쏟아져 나왔다. 지역경제를 지탱해 온 파나소닉과 도시바가 한꺼번에 공장 문을 닫은 탓이다. 뿐만 아니다. 샤프도 미에현 가메야마시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소니도 오는 3월까지 기후현 미노가모시에 있는 자회사 공장을 없앤다. 졸지에 4000여명이 직장을 잃게 된다. 일본 전자회사들은 일본 내 생산 시설은 줄이면서 해외 공장 건설은 늘리고 있다. ‘엔고(高)’와 전력 부족 탓에 제조업의 ‘일본 엑소더스’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제조업 공동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산시성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을 짓는데 올해 말까지 7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도 각각 30억달러씩을 중국에 투자해 8세대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국내 투자는 지지부진하지만, 2010년 이후 주요 대기업들이 해외에 투자한 금액만 줄잡아 35조원이 넘는다. 원가 절감이 1차적 요인이지만, 원화 절상과 전기 요금 상승이 ‘엑소더스’를 부추기는 점에선 일본과 닮은 꼴이다.

전자산업은 한국과 일본의 간판산업이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소니 샤프라는 브랜드로 세계를 제패한 뒤 20년 넘게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엔고 악재 속 내수 시장에 안주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일자리 창출의 대명사’인 전자산업의 쇠퇴는 실업자를 늘려 경제에 타격을 줬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한국의 전자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일본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는 듯한 징조는 그래서 불길하다.

◆한국 전자산업, 일본 전철 밟나

일본 전자산업은 엔고라는 악재를 이겨낼 무기를 갖고 있지 못했다. 특히 혁신하지 않는 경영은 추락을 부채질했다. 일본 전자업체는 D램, 리튬이온전지, LCD패널 등의 초기 시장을 석권했지만 기술 혁신에 실패하면서 삼성전자 등 후발 주자에 밀렸다. 휴대전화 기술에선 세계 표준을 외면해 고립을 자초했다. 1억명 이상의 막대한 내수시장이 ‘양날의 칼’이 됐다. 불황 때 내수시장은 일본 기업에 든든한 후원군이었지만, 한편으론 안주할 수 있는 방편이었다. 소니는 2011년 매출에서 내수 비중이 32%에 달했다. 파나소닉과 샤프는 각각 48%와 53%로 비중이 더 크다. 일본 전자기업이 이렇게 글로벌 트렌드를 무시한 채 내수시장에만 집중한 ‘갈라파고스 증후군’은 실패의 단초가 됐다.

아직까지 한국 전자산업은 수출 중심으로 일본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우선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엔고 덕을 톡톡히 봤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 중앙은행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엔화를 무제한 찍어내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은 ‘엔고 종언’의 선언이다. 원화 가치는 지난해 8월 말 이후 6%가량 올라 주요 20개국 15개 통화 중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일본 전자업체들이 엔고 탓에 쇠락의 길로 접어든 것처럼, 원화 가치 상승은 한국 전자업체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은 1670억원 줄어든다.

중국의 추격도 위협요소다. 10여년 전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은 모습과 비슷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평판TV 시장 점유율을 합친 게 샤프 점유율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0여년간 꾸준히 기술 혁신을 거듭해 2006년 소니와 샤프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한국 TV와 휴대폰을 베끼는 수준에 불과했던 중국 기술은 최근 10년 사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TCL은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량 면에서 소니를 꺾고 세계 3위 TV 업체로 떠올랐다. 스마트폰 시장에선 화웨이와 ZTE가 삼성과 애플에 이어 3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원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전자업계 1등이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위기의식을 가져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재부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20년 전부터 일본 조선업 기울어

조선 시장에서도 일본은 1970년대까지 ‘유아독존’이었다. ‘용접·블록 공법’이란 신기술을 앞세워 유럽에서 조선산업 패권을 뺏어왔다. 때마침 1차 오일쇼크가 터지며 유조선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자 일본은 이 혁신기술을 무기로 선박 수주를 싹쓸이했다.

일본의 자만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970년대 말 작업을 정형화하는 차원에서 정부 주도로 선박 표준 설계도를 만들었다. 이후 설계인력을 대폭 감축했다. 일본은 설계인력이 부족해진 뒤 기술혁신에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액화천연가스(LNG)선, 부유식 원유 생산저장 하역시설(FPSO) 등 고부가가치 설비가 신규 시장을 형성했지만 일본은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일본이 뒷걸음질을 한 탓에 한국은 2000년대 들어 세계 조선 1위에 올라설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들어 양상은 달라졌다. 중국이 무섭게 쫓아오면서 2009년과 2010년에는 수주량 기준으로 세계 조선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줬다. 2011년에 다시 앞섰지만, 지난해 수출량 기준으로 중국에 재역전당했다. 1990년대 한국과 일본이 엎치락뒤치락하던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인력 양성 면에서도 일본의 길을 답습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 수시 지역균형 모집에서 조선해양공학과가 미달 사태를 맞았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처럼 기술혁신과 시장흐름을 외면하고 전문 인력 양성을 게을리하면 우리 산업계는 언제든 뒤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도쿄=안재석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