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비앙카 스포르차의 초상’은 우주과학기술이 미술사를 바꾼 획기적인 사례다. 이 그림은 불과 6년 전까지만 해도 1만9000달러(약 2000만원)에 거래됐다. 다빈치 후대에 이탈리아에서 수학 중이던 독일 출신 미술학도가 다빈치의 기법을 본떠 그린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2007년 새 주인이 된 미술품 감정가 피터 실버먼이 과학적으로 정밀 감정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제작연대가 다빈치 생존시기와 겹치는 1440~1650년 사이로 판명됐다. 적외선 분석으로 다빈치가 다른 작품에서 쓴 것과 비슷한 기법을 찾아냈다. 다빈치는 질감과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 종종 자기 손을 사용했는데, 분필로 그린 이 그림에서도 유사한 손바닥 자국을 발견했다. 그림 상단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지문을 다중분광 방식으로 촬영한 결과 로마 바티칸 성당의 ‘성 예로니모’에 찍힌 다빈치의 지문과 일치하는 것으로 판명됐다. 다빈치 전문가는 이 인물화의 주인공이 밀라노 공국을 다스렸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의 딸이란 사실도 밝혀냈다. 이 작품의 현재 가치는 1800억원으로 추정된다.

《실험실의 명화》는 과학과 미술의 만남을 흥미롭게 탐색한 지적 여정이다. 현대 과학이 옛 미술에서 새롭게 밝혀낸 사실과 과학자 수준의 경지에 이르렀던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에 담아낸 과학적 진실 등을 소개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루이 파스퇴르 등 근대 과학의 기초를 세운 과학자들은 탁월한 회화 실력을 겸비했다.

1906년 스페인의 과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아름다운 신경세포 그림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카할은 과학자에게 그림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관찰 결과를 정밀하게 그리는 훈련은 관찰력을 강화시키고 일상적인 관찰로는 지나쳐버릴 수 있는 사항까지 자세하게 살피게 만든다.”

2005년 일본의 음성학 전문가 스즈키 마쓰미 박사는 모나리자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다빈치가 해부학적으로 정확하게 모나리자를 그렸다면 복원한 모나리자의 목소리가 90%까지 일치할 것이라고 그는 장담했다.

밤하늘의 별을 자주 그린 고흐는 천문학자들에게 관심거리다. 도널드 올슨 텍사스주립대 천문학과 교수는 고흐가 그렸던 시간과 위치를 추적한 결과 ‘달 뜨는 초저녁 풍경’은 일몰이 아니라 월출을 그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찰스 휘트니 하버드대 천체물리학과 교수는 고흐가 당대 천문학 서적을 탐독했고 하늘을 면밀히 관찰해 그림을 그렸다는 점도 찾아냈다.

베르메르는 카메라 장치를 통해 사진과 같은 풍경을 그려냈다.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도제 수업을 거친 장인의 솜씨가 아니라 과학적 성과였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그림에 인체해부학을 숨겨뒀다는 주장들이 잇따라 제기됐다. ‘아담의 창조’부분에서 창조주는 크게 두개골의 단면 속에 들어 있다고 세인트존스 메디컬센터의 메시버거 박사가 주장했다. 또한 ‘육지와 바다의 분리 장면에서는 조물주가 걸친 망토 속에 오른쪽 신장 구조가 담겨 있음을 미국 신장학 전문의 가라베드가 밝혀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