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성범죄·묻지마 칼부림·학교폭력'…대한민국은 1년 내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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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사이드 - 경찰팀 리포트 올해의 사건·사고현장 3개 키워드
엽기 성범죄
오원춘·김점덕·고종석 사건 등 술 취했거나 포르노 狂
112신고 처리…경찰대응도 부실
묻지마 칼부림
도심서 마구잡이 흉기 휘둘러…충동범죄자에 심리치료 확대를
학교폭력
왕따·자살 '교실의 참상'…학교의 축소·은폐가 더 문제
엽기 성범죄
오원춘·김점덕·고종석 사건 등 술 취했거나 포르노 狂
112신고 처리…경찰대응도 부실
묻지마 칼부림
도심서 마구잡이 흉기 휘둘러…충동범죄자에 심리치료 확대를
학교폭력
왕따·자살 '교실의 참상'…학교의 축소·은폐가 더 문제
2012년은 유난히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 해였다.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온갖 성범죄 사건이 1년 내내 터져나왔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성범죄자들은 성인뿐 아니라 아동·청소년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추악한 범행을 저질렀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묻지마 범죄’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잊을 만하면 되풀이돼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작년 12월 대구의 한 중학생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우리 사회 곳곳에 숨겨져 있던 학교폭력의 실상까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와 연일 주요 뉴스로 신문 사회면을 차지한 해이기도 했다.
국민들은 이들 뉴스에 공분했고, 마음 아파했다. 이런 여론은 성범죄 등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을 마련하는 전(全) 사회적 노력으로 이어졌다.
계사(癸巳)년 새해를 사흘 앞둔 29일, 다사다난했던 지난 1년의 사건·사고현장을 ‘성범죄’와 ‘묻지마 범죄’ ‘학교폭력’ 등 3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엽기적인 성범죄엔 ‘공식’ 있었다
지난 4월 수원 오원춘 사건 이후 제주 강성익, 통영 김점덕, 서울 서진환, 나주 고종석 사건 등 전국적으로 잇따른 성폭행 사건으로 국민들이 경악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올해 한국 사회를 가장 떠들썩하게 했던 범죄 이슈는 단연 엽기적인 성범죄 사건들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사건엔 일정한 ‘공식’이 있었다. 술, 게임 중독, 불법 포르노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인사건과 통영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범인인 오원춘과 김점덕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술에 취해 성욕이 생겨 여성이나 아동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고, 경찰 조사에선 “술 때문에 그랬다”는 앵무새 같은 진술을 반복했다. 서울 중곡동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30대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전과 11범의 서진환도 범행 당시 소주 1병을 마신 상태였다.
끔찍한 성범죄 사건의 피의자들은 ‘포르노광(狂)’이기도 했다. 범행에 앞서 포르노를 보거나 어김없이 포르노 동영상을 갖고 있었다. 오원춘은 하루 3~4번 스마트폰으로 음란물을 검색해 즐겨 봤고, 범행을 저지른 날에는 모두 39회에 걸쳐 음란 사진을 내려받았다. 김점덕은 컴퓨터에 ‘아동 등장 음란물’을 비롯해 포르노 동영상 70개를 저장해 놓고 있었다. 서진환도 범행 직전 컴퓨터로 포르노 사진 등을 봤으며, 나주 초등생 납치 성폭행사건의 피의자 고종석은 “평소 일본의 아동 포르노를 즐겨 봤다”고 경찰에서 털어놨다. 고종석은 심각한 수준의 게임 중독자이기도 했다.
성범죄자들에게 저항할 능력이 없는 아동·청소년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고종석과 김점덕이 성폭행하거나 성폭행을 시도했던 대상은 각각 7세와 10세의 여자 어린이였다. 세상 부모들을 절망케 만든 이들은 모두 피해아동의 ‘옆집 오빠’ ‘옆집 아저씨’였다.
오원춘 사건은 엉망인 112 신고접수, 늑장 탐문 등 경찰의 총체적 부실·무능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많은 국민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리기도 했다. 오원춘에게 끌려간 여성 피해자가 살해되기 전 112와 연결됐던 시간은 무려 7분36초. 그러나 신고 접수 직후 피해여성을 찾아 13시간이나 헤매는 등 경찰의 무능하고 안이한 대응은 결국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사건으로 해당 경찰서장 등이 무더기로 직위해제되고 경찰청장까지 사퇴했다.
◆‘묻지마 범죄’…“길 나서기 무섭다”
동기도, 대상도 없는 ‘묻지마 범죄’는 평범한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급증한 ‘선진국형 범죄’라고 했다.
지난 8월22일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김모씨(30)가 퇴근하던 옛 직장 동료와 행인에게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보다 나흘 앞선 18일 경기 의정부시 지하철 1호선 의정부역에선 유모씨(39)가 아무나 다치라는 식으로 10여분간 흉기를 휘둘러 시민 8명이 다쳤다. 무고한 시민들이 전철을 타고 가던 길에, 여의도 한복판에서 퇴근길에 범인들이 느닷없이 휘두른 흉기에 날벼락을 맞았다. 단지 울컥해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무작위로 해치는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였다.
범인들은 뚜렷한 일자리가 없고 가족·친구와도 담을 쌓고 사는 ‘은둔형 외톨이’였다. 유씨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독신으로 지냈다. 10여년 전부턴 일정한 직업과 주거 없이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며 여관 등을 전전했다. ‘여의도 칼부림’을 저지른 김씨도 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난 후 가족과 왕래마저 끊긴 채 고시원에서 1년 넘게 은둔 생활을 했다. 사회적 단절과 경제적 고립 등에서 오는 불만과 괴로움을 홀로 삭이다 갑자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묻지마 범죄가 이어지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10여년 전부터 사회문제화된 범죄가 우리 사회에서도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에선 1990년대 후반 들어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에 의한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들어 묻지마 범죄가 전체 범죄 발생량의 40%까지 늘었다. 묻지마 범죄를 선진국형 범죄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전히 일반적인 살인은 원한이나 치정관계 등에 의해 저질러진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패턴의 범죄(묻지마 범죄)가 발생하면 전염병처럼 번지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적 불만 해소’의 방편으로 범행을 선택하는 범죄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묻지마 범죄자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성범죄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심리치료 대상을 충동과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에게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근절되지 않는 학교폭력…자살로 이어져
작년 12월20일 ‘왕따(집단 따돌림) 폭력’을 못 견딘 대구의 한 중학생이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 1년간 전국 1만1000여개 초·중·고교에선 그동안 가해학생의 위협과 교사들의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왕따 폭력의 적나라한 실상이 속속 공개됐다. 학교폭력, 집단따돌림은 갈수록 교묘하게 자행되고 있었다.
숨진 대구의 김모군(당시 14세)은 유서에서 학교폭력과 왕따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고발했다. 김군은 9개월간 같은 반 친구 2명으로부터 ‘노예’처럼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칼로 김군 몸에 상처를 내려 하거나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물고문을 했다. 라디오 선을 목에 묶어 끌고 다니기도 했다.
‘교실의 참상’은 통계로도 확인됐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8~10월 ‘2012년 2차 학교 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초·중·고교생 32만1000명(조사 대상 학생의 8.5%)이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왕따 등 학교폭력은 중·고생들의 잇따른 자살사건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했다. 지난 4월 1년 이상 만성적으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투신자살한 경북 영주 중학생 이모군(14)을 비롯해 지난 연말부터 최근까지 대구·경북지역에서만 15명이 학교폭력 등으로 자살했다.
학교폭력의 피해 자녀를 둔 부모들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교가 조사와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가 피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지 않고 학교 이미지를 먼저 생각해 은폐·축소하려 한다는 것이다.
경찰이 올초 ‘학교폭력 사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교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를 방관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교사를 형사입건할 수 있다’는 방침을 정하고 학교폭력 문제를 방관한 교사들에 대해 잇따라 수사에 나서면서 교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