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20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1876~1973)가 결혼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두 번 놀랐다. 82세의 고령에도 결혼을 생각할 수 있다는 열정에 놀랐고 신부와의 나이 차이가 60년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스페인 출신의 카잘스는 행동하는 예술인으로 대중의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던 인물이었다. 공화정을 지지하던 그는 조국이 독재자 프랑코 네로의 손에 넘어가자 민주정치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귀국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스스로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늘 자신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선언하고 음악을 통해 인류의 화합과 세계평화를 호소했다. 그는 자신의 그런 신념을 직접 행동에 옮겨 전 세계를 순회하며 평화십자군 활동을 벌였다.

그런 그가 20대 초의 앳된 제자와 결혼한다고 발표했으니 그를 사랑하던 음악애호가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사람들은 고령의 카잘스가 판단력을 잃었다고 생각했고 일부 언론은 그것을 고령의 명사와 젊은 미녀의 부적절한 결합이라고 헐뜯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랑을 키워간 정황과 고백을 들어보면 그것을 단순한 ‘야합’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카잘스가 마르타를 처음 만난 것은 1951년 남프랑스에서 열린 프라드 음악축제에서였다. 축제 총감독으로서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던 그에게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한 작가가 첼리스트 지망생인 자기 조카딸과 함께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어머니를 둔 카잘스로서는 그 각별한 손님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카잘스 눈에 비친 마르타는 사진에서 본 그의 어머니의 사춘기 모습을 빼닮았다. 흑발을 등 뒤로 길게 늘어뜨린 너무나 사랑스러운 14세 소녀에게 그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마르타는 그저 사춘기 소녀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카잘스는 자신에게 배움을 청한 마르타와 다시 만난다. 그때 마르타는 뉴욕의 명문 매너스 음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직후였다. 사춘기 소녀는 바야흐로 매혹적인 여인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르타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집안에 머물며 카잘스로부터 첼로의 비기를 전수받았다. 그는 카잘스의 제자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성격도 어찌나 쾌활한지 그의 곁에만 가면 누구든 즐거워지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카잘스가 마르타와 좀 더 가까워진 것은 마르타가 카잘스의 일을 도와주면서부터였다. 자연히 두 사람은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카잘스가 마르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은 1955년 마스터클래스를 맡기 위해 체르마트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그는 마르타에게 체르마트에 혼자 가면 외로울 것이라고 고백했고 이에 대해 마르타는 자신도 스승과 헤어지는 것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고 화답한다. 바야흐로 사랑은 그렇게 무르익어갔다.

체르마트에서의 마스터클래스를 마친 후 카잘스는 어머니와 마르타의 고향인 푸에르토리코를 방문했고 그해 겨울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한다. 그는 그곳에 음악축제를 마련, 의욕적으로 행사 준비에 나선다. 사랑은 난관 속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일까. 카잘스는 리허설 도중 심장발작으로 쓰러지고 만다. 세계적인 심장전문의들이 이 세기의 예인을 살리기 위해 남미의 작은 섬나라로 몰려들었다. 그가 다시 첼로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르타만이 확신을 가지고 카잘스를 돌봤다. 기력을 회복한 카잘스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예전의 연주 감각을 되찾게 된다. 사랑의 위대한 힘이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1957년 스승과 제자는 결혼식을 올린다. 둘의 관계가 단순한 야합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카잘스는 마르타의 헌신적인 보살핌 아래 건강을 유지하며 음악을 통한 평화의 사도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전개한다. 심장발작 이후의 카잘스 인생은 사랑이 가져다준 보너스 였던 것이다.

카잘스가 유명을 달리한 지 3년이 지난 1976년 마르타는 ‘팜비치 데일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카잘스의 청혼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카잘스는 나이를 초월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나이든 사람의 지혜와 카리스마 넘치는 젊은이의 패기를 겸비한 사람이었어요. 그런 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마르타가 카잘스에게서 발견한 것은 노인 카잘스가 아니라 그의 젊은이다운 패기였던 것이다. 그 패기 넘친 에너지는 그가 남긴 숱한 첼로곡 연주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듣는 순간, 당신은 또 다른 마르타가 된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